[낭비없는삶/제로웨이스트]미니멀리즘에 대하여...




 

이 집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신혼짐을 들여오기 전 청소하러 왔을때다.


완공이 덜 된 새집에 들어온터라 혼자 자취하던 남편짐 몇 개 가져다 둔것 외에 가스렌지조차 없는 텅텅 빈 상태였다.

우리는 한참을 여기저기 쓸고 닦고 치우며 녹초가 된 상태로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놓고 먹을 상도 없어서 곰의 프린터가 담겨있던 박스를 접어 밥상삼아 올려놓고 먹었는데 그때의 우리 모습과 좋았던 분위기가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세간살이가 하나도 없는 집, 청소를 하다 시킨 짜장면 한그릇, 밝게 웃던 우리.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행복한가?



미니멀리즘 한답시고 집 정리를 하는동안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있다.

결혼 8년, 아이가 없음에도 처음의 단촐했던 살림은 온데간데 없고, 더 이상 쌓을곳이 없도록 물건으로 가득한 집이 되었다. 청소는 안좋아해도 정리는 좋아하는 성격탓에 언뜻보기에 물건으로 가득차 보이지는 않았지만 꺼내서 처분하고 정리할수록 우리집에 이 모든것들이 다 어디에 들어있었나 싶게 뭔가가 나오고 또 나왔다.


원흉은 나였다.

싸다고 사고, 좋다고 사고,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사고, 남들이 갖고있으니 사고, 유행이 지나서 또 사고, 나중에 쓴다고 사고 그 짐들을 정리할 도구를 사고..... ㅠㅠ

우리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던 책도 옷도, 그릇과 식재료도 모두 내 짐이었다. 그렇다고 곰에게 죄(?)가 없는건 아니다. 곰은 공짜에 약했다. 누가 주는 물건은 무조건 다 받아오고, 1+1이나 사은행사를 잘 챙기며, 뭐든 잘 버리지 못했다. 또 사다 쟁여놓는걸 좋아해서 우리 둘은 서로 불만없이 꽉꽉 채우기 바빴다.



평일 내 일하느라 스트레스 받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것과 비교하며 좌절하고, 그 스트레스를 푸느라 주말이면 또 쇼핑을 하고, 맛집을 찾고, 쇼핑한 카드값을 갚느라 다시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하는 사이클.

어느 순간, “따지고 보면 내가 이번달은 이 물건 하나를 위해 일한건가?”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다들 그러고 사는데 뭐 ... 이 물건은 너무 예쁘니 갖고 싶은걸?” 하며 그냥 넘겼다.


우리는 ‘일하고-TV보고-돈 쓰는’ 쳇바퀴에 갇혀있다. 직장에서 지쳐 떨어질 때까지 일하고 돌아와서는 TV앞에 널브러진다. TV는 우리에게 쇼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는 광고를 쏟아낸다. 그러면 우리는 쇼핑을 한다. 그러고는 돈을 지불하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니 레너드 ‘물건이야기’ 중



공공연히 맥시멀리스트라 자처하며 그게 당연한것처럼, 맥시멀리스트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표현이자 자랑인냥 떠들어댔다.



패스트패션의 심각한 문제들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혀 연관없을것 같은 ‘제로웨이스트’를 하면서부터다.

쓰레기 문제를 파고들다가 패스트 패션을 위해, 유행을 빨리 바꿔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과 노동력이 착취되는지, 얼마나 많은 지구환경이 오염되는지 연관성을 알게되었고 뭔가를 산다는것, 내가 가진다는 것은 돈을 주고 물건을 얻는 ‘소비’ 그 이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좋다고 사서 한 번 쓰지도 않고 유행이 지나거나 마음이 떠나서 버린 물건엔 정당한 댓가를 받지도 못한 제3국 노동자의 땀과, 아마존의 나무와, 서식지를 잃은 동물의 한숨과, 이권을 다투다 일어난 전쟁의 희생들이 들어있었다.


그걸 이제사 깨달은 내가 너무도 창피했고, 맥시멀리스트라 떠들던 것이 부끄러웠다.


노동자의 안전이나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따위엔 아랑곳않는 기업들의 마켓팅에 현혹돼서 끊임없이 소비하고도 만족이란 모르는 사회!!


‘사람이 넷인데 자기가 한 조각 더 먹으면 한 사람은 뭘 먹냐’며 배려없는 동료를 욕하면서, 한정된 자원에서 소외된 타인은 생각지 않고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이 났던 내 욕심을 돌아보게되었고, 그걸 부추기는 풍토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한 내가 한심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유한한 세계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빨리쓰고 많이쓰고 얼른 버리라고 재촉하는데 그런식의 시스템은 지속될 수 없다.




‘물건이야기’ 에서 지난 30년 동안 자연자원의 1/3을 써버렸다는 내용을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구의 역사를 보았을때 30년은 찰나조차 되지 않는 순간이다. 분명 잘못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물건을 줄여나가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 많은 물건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건 이미 깨달은 바, 물건을 늘리지 않고 가지고있는 물건의 쓰임을 늘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나는 이미 이 지구상에 많은 해를 끼쳤다.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이미 하던 버릇이 있어서.. 예쁜걸 보면 사고싶은 마음이 들어서.... 잘 될지 모르겠지만,

정신줄 단단히 잡고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삶, 단출하고 검소한 삶, 많이 가지지 않고 충만하게 누리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환경학자들은 21세기까지 이 지구가 이대로 존속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염려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우리 시대에 와서 너무도 탐욕스럽게
고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전에 비해 얼마나 풍요롭게 살고 있는가. 그러면서도 안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궁핍한가. 
이삼십년 전 우리는 연탄 몇 장만 들여놓아도, 쌀 몇 되만 가지고도 행복할 수 있었다.
삶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차지하고 살면서도 그러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 그것은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가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Reactions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