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책은 참 재미있다.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 읽으며 놀라기도 하고 킥킥대기도 하며 그 연구를 내가 하는듯(비숲), 그 여행을 내가 떠난듯 (마지막 기회라니?) 즐거웠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등장하는 동물들에게 마음이 갈수록 그들에게 닥친 상황이 안타까웠다.
멸종되고 있는것이 단지 이 동물들이고 파괴되는건 그들의 서식지뿐일까?
무탄트 메세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당신이 남을 해치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해치는 일입니다. 남을 도우면, 그것은 바로 자신을 돕는 일입니다.
(...)
무탄트들은 고작해야 백 년을 생각하고, 남들과 분리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
우리 선조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 그리고 지금 지구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은 하나입니다.
말로 모건, <무탄트 메세지> 중에서
비숲은 국내 최초 영장류학자의 생고생 긴팔원숭이 관찰기이다.
야생에 사는 동물의 일상을 관찰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그들이 받아주기를 기다려야한다.
매일 원숭이를 만나러 가고 뜀박질을 하며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게 되기까지만 꼬박 8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영장류도 달아나는건 여느 동물과 매한가지이지만 어떻게든 놓치지 않고 쫓아가는데 성공하면, 그리고 그들과의 경주시합을 여러번 치르면, 어느순간부터 이들은 포기한다 어떤 시점부터 인간의 존재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이 특징은 지겨워하는 능력 때문이다.
(...)
영장류는 그 어떤 동물보다 호기심이 많고, 그것이 충족되고 나면 완전하게 흥미를 잃는다. 소스라치게 인간을 무서워하던 동물이 어느새 그 공포의 대상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무시하기에 이른다. 익숙해지는 것이다.
33-34p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건 저자의 시선이 인간중심적이지도, 대상을 보는 초점이 기능주의에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습지는 00역할을 하기 때문에 , 원숭이는 00 때문에 중요하며 식물은 00으로 쓸 수 있으니 보호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명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는다.
존재는 기능주의적 근거로 자신을 증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
72p(전자책 기준)
이 문장이 너무 좋았다. 묘한 위안이 되기도 했다.
존재는 기능주의적 근거로 자신을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며 동물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걸보며 인간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무례한 시선으로 자연을 보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마지막 기회라니?’ 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와 라디오 피디 마크 카워다인은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만나러 세계곳곳으로 향한다.
내가 인상깊었던 동물은 카카포라는 새 인데 이 새 이야기는 존재의 기능주의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카카포는 뉴질랜드의 날지못하는 뚱뚱한 새이다. 야행성 녹색 앵무새인 카카포는 뉴질랜드에 사람들이 살지 않는 동안 날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 자신이 옛날에는 날 수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더구나 카카포에게는 뭔가가 자기를 해칠거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적이 공격을 해도 어리둥절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이 정말 사랑스러운 카카포, 3kg 이 넘는 몸으로 뛰어다닌다고 한다. |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새는 수컷이 낮은음을 내서 암컷을 유혹한다. 그 소리는 새소리라기보단 심장이 고동치는 듯한 소리에 가깝단다. 들어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울음소리가 대단히 멀리 퍼져 나가는데 때문에 소리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라고한다. 그런데 암컷 카카포 조차도 그 웅웅대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코믹 SF작가 답게 더글러스 애덤스는 그 상황을 인간에 대입에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 잡아봐라"
"자기 어디있는데?"
"나 찾아봐라"
"대체 어디 있냐니까?"
"나 찾아봐라"
"아니 오라는거야 말라는거야?"
"나 찾아봐라"
"이런 제기랄"
"나 찾아봐라"
"가서 딸딸이나 쳐!"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빵 터져서 한참이나 웃었다.
이렇게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짝짓기에 성공하더라도 암컷이 3-4년에 한번 알을 낳고 그마저도 족제비에게 날름 먹히기 일수라니... 아직 멸종이 안된것이 더 신기했다.
이 새를 접해본 비동물학자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자연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그냥 되는대로 한번 만들어 본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9-200p
신도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나 그냥 만들어 본 생명이라니 ㅎㅎ
이를두고 ‘앞으로 올 사랑’ 에서 정혜윤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인간중심주의자’가 아니라 ‘카카포중심주의자’가 되고 싶다. 어떻게든 생존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나도 ‘그냥’ 만들어진 창조물 계보에 속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나 같은 사람도 내가 무슨 쓸 만한 능력을 가졌는지 증명할 필요 없이 살게 해달라고 카카포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64p
어떤 능력을 가졌으며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이 시대에서 '그냥 만들어진' 카카포란 존재 자체가 내게도 위안이 되었다.
“ 존재는 기능주의적 근거로 자신을 증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 “
이 책들을 읽고나니 채식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이런 귀엽고 신비한 생명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고싶지 않았다.
팜유를 많이 먹으면 숲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오랑우탄 보단 30년 이상 먹은 라면의 맛을, 맥주에 더한 바삭한 스낵을 포기하기 아까운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력이 좋지 않고 양쪽 눈 사이가 멀어 뭔가 보려면 왼쪽 한번, 오른쪽 한 번 봐야한다는 코뿔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진짜로 떨어져 무안한듯 황급히 올라가더라는 긴팔원숭이,
다른 개체가 영역에 넘어왔는데도 수컷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나서 뒷통수를 날렸다는 기번암컷,
서식지까지 처들어 와서 귀찮게 하는 생태관광객들에게도 볼펜을 눌러보며 관심을 가져주는 고릴라,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냄새가 난다는 코모도 도마뱀에 이르기까지....
이런 사랑스런 생명체의 서식지를 고작 맥도날드 햄버거와 바삭한 안주, 화장실 휴지나 생활용품등을 위해 없앨수는 없는 노릇이다. (야생숲이 사라지는 가장 큰 세가지 이유는 육식, 벌목, 팜유생산 이라고한다)
아니 정정하겠다.
사랑스럽지 않더라도, 그 동물이 살아있는게 지구상의 무슨 이득이 되는지 증명할 수 없더라도(증명할 필요도 없지만) 내가 쓰고 먹는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과 그들의 집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나는 이것 말고 더 필요한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47-8P
우리는 해마다 1천여종의 동식물을 지구에서 쓸어내고 있으며 그 속도가 조금씩 더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천년만년 살것 같지만 그들이 사라진 지구에서 인간도 오래 살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그리고 이들처럼 곧 서식지를 잃을지도 모를 한 생명으로써 소비를 줄이고 육식도 팜유도 피하며 최대한 덜 해를 끼치도록 애쓰며 살아야겠다. 자연에 영향을 덜 주는 삶으로 세상에 기여해야겠다. 이제 인간의 중요하지도 않은 목적 때문에 자연이 희생되는 일은 막아야겠기에 ....
동물 한 종이 멸종한다는 것은 모나리자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매일매일 태워 없애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표현인, 하나의 걸작인 위대한 생명체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정혜윤, <사생활의 천재들> 속
'인간의 서식지에 대해서'- 김산하(야생영장류학자)와 함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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