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에세이]‘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찾으셨어’ 영화 미나리 를 보고.....






(글 내용중에 영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엄마집에 갔다.


엄마가 은행볼일을 좀 도와달라고 해서였다. 세금도 지로용지를 들고 직접 은행에 가서 납부하고 송금도 다 은행에서 했던 엄마세대에겐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는 요즘의 편리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은행일을 돕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넉넉하지 않은 연금으로 생활을 꾸리시는데 통장에 잔고가 생각 이상이었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그동안 내가 준 용돈이나 가욋돈이 생기면 단 한푼도 쓰지 않으셨단다. 생활비도 세금과 꼭 필요한 지출외엔 아껴서 모두 모아두었다고.... 나에게 목돈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혹시 당신이 덜컥 아프기라도 하면 너희에게 짐이 될까봐 걱정이라며, 엄마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게 걱정되면 돈을 모을것이 아니라 건강 생각해서 운동이나 좀 하라고 말하면서도 눈물이 났다. 이제 엄마의 노후를 걱정해야할 나이가 된 것이다.


모든걸 다 주고도 늘 해준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는 울 엄마. 넘치게 받은 사랑을 갚을 길이 없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건지... 부모가 안돼봐서 그런가 나는 이해가 안갔다.


그렇게 한바탕 눈물바람을 하고나니 엄마랑 같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보는걸 좋아하는 울 엄마, 코로나 때문에 작년 한해는 같이 영화본적도 한번도 없는데...


그때 미나리가 개봉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랜만에 간 영화관은 이전의 모습과 매우 달랐다. 상영시간을 알리는 전광판도 꺼져있고 직원도 홀 전체에 달랑 한 명 뿐이었다. 영화관 아래층의 음식점이나 카페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자주가던 빵집도 사라졌다. 코로나로 힘들다. 뉴스에서 듣던 소상공인들의 현실이 느껴져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미나리는 미국이민 초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그 어디에도 시대나 날짜를 대놓고 나타내지 않았지만 오래된 티비, 상품(마운틴 듀)의 포장이나 상점의 모습등으로 알 수 있었다.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고 있지만 농장을 운영해서 성공하고 싶은 아버지와 병아리 감별일을 계속 하더라도 가족이 먼저인 어머니의 의견차이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평행선을 그리는듯 보였다.




아이들을 봐주기 위해 한국에서 할머니가 오시면서 본격적인 가족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때 할머니와 데이빗의 작은 에피소드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짓게 해주었다.


영화를 보기전에 각종 상을 휩쓸고 있는 윤여정의 연기가 기대되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왜 상을 탔지?’ 싶었다.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 윤여정의 딱 윤여정스러운 연기였다.

그리고는 곧 깨닫게 되었다. 평소 내가 보던 그 자연스러운 연기가 이미 월드클래스 였다는 사실을...


월드 클래스 연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할머니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미국에 와서도 힘겹게 사는 딸네집에서 아이들을 봐주며 도움을 주고 싶었던 할머니는 덜컥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 때문에 말도 불편하고 한쪽 몸도 불편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손을 돕고 싶어 행주질을 하고 살림을 돌본다. 창고에 불이난것도 그 마음의 연장이었다. 혼자 집에 있던 할머니가 소일거리로 창고도 정리하고 쓰레기를 태우다 타던 조각 하나가 날아갔고 그게 건조한 풀과 강한 바람을 만나면서 삽시간에 옮겨붙은 것이다.


할머니는 놀라 지팡이로도 누르고 꺼보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불에타는 창고를 바라보며 황소같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를 외치는 장면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낮에 엄마가 해준게 없어 미안하다고 했던 말이 오버랩 되며 눈물이 솟구쳤다.


할머니는 넋이 나간채 홀로 어딘가로 향한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나오지 않았지만 내 눈엔 죽으러 가는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뛰면 안되는(심장이 아파서)손자 데이빗이 할머니의 말대로(“넌 내가 아는 사람중에 가장 strong man 이야. 데이빗아”)씩씩하게 뛰어서 할머니를 가로막는다. 그쪽은 우리집 방향이 아니라고.. 우리랑 같이 저쪽으로 가자고...


넋이 나간듯한 할머니는 그제야 정신이든듯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사건의 종결없이 급히 끝나버리는 듯한 영화의 엔딩에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어리둥절 하다가 이내 깨달았다. 중요한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다는 이민자들의 역사, 아메리칸 드림으로 이룬 미국이 지금과 같이 이민자들을 박대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 노동의 가치, 자본주의 같은 거대담론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농장을 더 중요시 하던 아버지가 불이나자 가족을 제일 먼저 챙기고, 농장일을 마뜩치 않아 하면서도 남편이 힘들게 키워낸 작물을 불타는 창고에서 하나라도 더 건져내려 뛰어든 어머니, 할머지 같지도 않다고 말하면서 할머니를 막아세워 같이 집에가자고 손을 내민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손을 잡은 할머니, 모든걸 잃었지만 이번엔 부부가 함께 찾아낸 우물자리, 아빠 손을 잡고 ‘할머니가 자리를 잘~ 잡아 심어놓은’ 미나리를 캐러오는 데이빗의 모습에서 이 가족의 사랑과 희망을 보았다.



할머니가 자리를 잘 잡아 뿌려놓은 미나리 씨처럼, 할머니세대가 잘 자리잡도록 해준 덕에 아빠엄마세대도 데이빗도 이국땅에서 잘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정말 중요한게 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이게 가족이고 이게 사랑이야 라고 정의하지 않고 그게 무얼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제목이 왜 미나리 인지에 대해서도...) 우리 이전세대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사건만을 보여주며 나머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영화.

하지만 따뜻한 시선만은 놓치지 않는 영화.


다시 보고 싶을만큼 충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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