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글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포장하고 감춰보려해도 감춰보려는 시도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체하는 교만이, 불안한데 괜찮은척 하는 떨림이, 저도 못하면서 잘하라고 외치는 오만이, 서툴지만 조심히 내미는 선의가 은연중에 모습을 드러내고 문장 틈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좋은글을 쓰려면 우선 좋은 의도와 좋은 태도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기교가 부족하고 멋없는 문장이라도 어둔밤 등불처럼 그 마음이 새어나올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슬아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슬아 같은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글방에서 일어난 일, 글 쓰는 법을 배우고 가르친 일들을 읽으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나는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마인드인가? 나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나?
어떤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옳고 그르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자기 생각이 옳은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만 무심히 던질 수 있을까?
큰맘먹고 구입한 책상을 샤프로 찍는 어린학생에게 “ㅇㅇ 아 하지마! 이 책상 비싼거야” 라고 하지 않고 이슬아처럼
“있잖아. 나 이 책상 많이 좋아해”
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흔 넘은 언니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며 자신의 1인분 짜리 삶을 실감하고, 줌파 라히리와 김혜리와 은유작가의 책을, 메리 올리버와 사노 요코와 토리 모리슨도 읽고 아룬다키 로이도 읽었다는 그 마음이, 그들보다 덜 살아서 그리고 덜 알아서 열심히 읽는 수밖에 없었다는 그 마음도 참 좋았다.
더 나아가 동물이 등장하는 영상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라캉의 말을 빌려 표현한 ‘감동은 쉽지만 흔들림은 어렵다’ 는 이야기는 어떤 내면의 울림을 주었다. 말 할 수 없는 동물의 입장을 대신 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슬아의 신문연재 글을 본적이 있다. 그 다짐과도 일맥 상통했다.
143p. 감동적인 동물 영상들이 범람하는 한편에는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수산 현장이 있다. 그라인더에 갈리는 병아리와 살처분 당하는 돼지의 얼굴들도 있다. 그 현장 역시 마음만 먹으면 유투브에서 시청 가능하다. 나는 이쪽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동물을 가장 많이 귀여워하는 시대이자 동물을 가장 많이 먹는 시대를 살고 있다. 외면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길러지는 반면, 직면하는 능력은 애를 써서 훈련해야 얻어지기도 한다.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수업에서 나온다.
훌륭한 사람은 실수도 하지 않고, 선한 행동만 하며 성인군자처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한 일과 실수를 객관적으로 되짚어 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반성하고 수정하고 생각해보는 사람이다.
나보다 어린 네가 뭘 알겠냐고 무시하지 않고, 나보다 적게 배운 네가 왜 나서냐고 질타하지도 않고, 내가 겪지 않은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매일의 일상에서도 배울것을 찾는 사람.
이슬아는 그런 점에서 좋은 사람, 노력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의 글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나보다 어린 작가를 좋아해 본적이 없는것 같다.(아! 정세랑 작가가 있네 ㅋ) 인생선배의 조언은 순순히 받아들이지만 나보다 어린 네가 뭘 알겠냐는 마음이 어쩌면 내 안에 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슬아의 글을 읽고나니 왠지모르게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라떼는 말이야’ 하며 지금 세상 좋아진 거라고 꼰대짓 하는 어른이 아니라, 나도 다 겪은 일이라며 전부를 아는척 단정짓는 어른이 아니라, 나도 겪어봤지만 힘들더라고 너도 지금 참 힘들겠다고 그럼에도 잘하고 있다고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북돋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이 시 같은 사람… ^^
281p
운명적 이끌림을 아는 내 아이
-재윤이에게
학원 시간에 늦은 열 살짜리 꼬마에게
반성문을 요구했을 때
코를 훌쩍이며 써내려간
내 사랑하는 아이의 반성문
어여뿐 반성문
나는 축구공만 보면 끌려간다
축구공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
눈을 감고 걸어도
축구공이 나를 부르면
나도 모르게 끌려간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끌려가겠다
아아.
삶의 매혹을 아는 너의 눈빛이
얼마나 투명한지
나는 죄를 짓는 것만 같다
끌려가렴 아이야
운명처럼 부르는 그 무엇이 있으면
귀를 쫑긋 열고
세상의 끝이라도 쫓아가렴
가늘고 유연한 다리로 공을 몰듯
지구의 바깥이라도 쫓아가렴
그 모오든 삶은
운명적 이끌림인 것을
이미 직감한 내 아이야.
- 이슬아의 글쓰기 스승인 어딘 씀.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