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에세이]조급함




 

6월의 독서기록장


읽은 책은 한 줄이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건 올해 3월 들어서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었다.

작년에 집정리 하면서 책을 비울때 ‘이런책도 우리집에 있었나?’ 싶은 책도 나왔고 ‘이건 읽었나?’ 기억이 안나는데 들춰보면 내 글씨가 잔뜩 써있는 책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판본별로 산 게 아닌데 여러권인 책도 있었다.


최소한 읽었는지 안읽었는지는 구분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가벼운 마음으로 단 한줄이라도 감상 평을 남기자고 생각했다. 그 무렵 갑자기 쓰고 싶어지기도 했다. 어떤책은 읽는 도중에도 책장을 덮고 쓰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릴때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독서감상문을 쓰려고 읽는 책은 싫었다. 읽으면서도 집중되지 않고 ‘이걸 어떻게 엮어서 써야하나’ 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너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얘기가 또 달랐겠지만 그런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나쁜건 아니다. 책읽기가 언제나 즐거움을 주어야 하는건 아니다. 쓰는건 고통스러울때가 많지만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며 글을 쓰고 다듬는 과정에서 배우는 점도 많았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내 독서기록은 마감이 없으니 부담도 없고 누가 억지로 시킨것도 아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3월이면 연초이고 열심을 내면 1-2월에 읽은것도 남길 수 있지 않겠나? 올해를 나의 독서기록 원년으로 만들어보자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너무 좋았던 책은 서평도 잘 쓰고 싶었다.

“좋았다. 재미있었다. “ 따위의 표현으로 감상평을 남기는건 좋은 책에 대한 모독 같았다.

잘쓰고 싶으니 막히고, 막히면 시간이 많이들고 그러다보니 미뤄두게 되었다. 미뤄둔 책은 그 사이 기억도 가물가물해져 다시 들춰봐야 쓸 수 있다. 지금도 내 저장글에 그런 책들이 여럿이다.


별 애정이 없는 그냥 그랬던 책은 오히려 부담없이 쓰기 시작했다. 짧게 쓰고 넘어가자고 시작하고 쓰다보니 끝이 났다. 가벼운 마음이라 그런가 좋은 글이 나오기도 했다.

세상일이란 참 희안하다.


기록을 바로바로 남기지 않는것도 문제가 되었다. 읽는건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데 기록은 ‘한꺼번에 쓰지뭐’, ‘나중에 하지뭐’ 하는 사이에 계속 밀리고있다. 블로그와 비교적 간단히 남기는 인스타의 독서기록을 합쳐도 아직 올해 읽은 책의 반도 못썼다.


부담이 되었다.

나만의 다짐이지만 잘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게 나와의 약속이라지 않은가?


지난주는 뭔가 바빠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독서기록은 단 한개도 남기지 못했다. 단 한주 였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흐름이 끊긴다.

독서기록이 밀리니 저 혼자 진도 나가는 독서가 부담이 되었다.


이번달은, 올해는 책을 몇 권 읽었는지 세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소장한 책만 몇천권이고 평생 만여권의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얇은 책이나 만화책으로 읽었으면 모를까 독서엔 절대적인 시간이 들어가는데 만권이라니 …그런걸 다독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다.

그리고 빨리 많이 읽는것이 좋은것만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허세가 독서에 까지 침범해

‘내가 이만큼이나 가졌다’를 자랑하는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다독가의 허세를 만날때마다 히틀러를 생각한다. 그는 엄청난 독서광에 그림과 동물을 좋아했으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리고 인류에 치명상을 남겼다.


독서의 진정한 의미는 책 안의 내용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을 더 많이 가지는게 아니라 내가 가진 편견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깨는거라고 말이다. 괴테는 “무식한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허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것을 두려워 하라” 고 했다. 독서를 많이 할수록 혹시나 틀린게 있을까봐 확신에 차서 이야기 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며 타인의 의견도 경청하고 점점 더 겸손해지는것, 결과적으론 그 행위가 일신상의 이득이 아닌 공동선에 조금이라도 일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로 2021년 6월 8일,

6월들어 완독한 책이 한권도 없다.

6월에 독서기록도 하나도 쓰지 못했다. 뭔가가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다. 시간을 많이 못냈지만 안 읽고 있는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여러권을 읽어서 끝낸 책은 없다.

그런데도 이 조급함은 왜 생기고 또 무엇에 대한 조급함일까?


나는 뭘 잘하고 싶은걸까?


나는 진짜가 되고싶다.

척하고 포장하는 위선적이거나 위악적인 사람말고 진짜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

찐인 내가 되고싶다.


진짜 내가 되는 일엔 제한속도도 기한도 없다.

그런데 말로는 독서의 진정한 의미를 따지면서 속으론 눈에 보이는 수치를 만들고 싶은걸까? 독서기록 어플에 전시하는 완독 책을 갖고 싶은걸까?



누구랑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내 안에 생기는 이 느낌이 무언지 가만히 살핀다.



조급하다 :

늦거나 느긋하지 아니하고 매우 급하다.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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