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다.
껍질을 손으로 싸악~ 벗겨 한 입 베어물면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말랑 복숭아를 사랑하지만 그런 복숭아는 장마를 잘 이겨냈을 경우에만 먹을 수 있다. 아직은 좀 이르다.
작년엔 50일이나 된 길고 긴 장마와 폭우로 매년 박스째 사다놓고 먹는 복숭아를 향만 겨우 맡아봤다. 그마저도 복숭아를 물에 씻은 맛이었다.
향도 없고 밍밍했다. 왜 아니겠는가?
작년에 못먹은 탓인지 2년을 기다렸기에 올해 복숭아가 보이자마자 먹고 싶었다. 지금 나오는 건 크기도 작고 딱딱한 조생종이라 내 취향은 아니지만 복숭아 계의 샤인머스캣, 복숭아계의 에르메스 라는 말에 유기농 대극천 복숭아를 구입했다.
복숭아는 아주 달고 맛있었다.
장미향 같기도 한 은은하고 달콤한 향에 딱딱보다는 쫄깃하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과육도 좋았다.
유기농으로 복숭아를 키운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10% 수확을 하신적도 있다고.. 😭) 게다가 손가락으로만 눌러도 멍이들어 팔기 힘든 복숭아를 택배배송으로 먹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더 감사히 먹으려고했다.
자두보다 조금 크고 천도복숭아 보다도 작은 크기에 35000원이나 하는 비싼 과일이지만 그래도 이정도 맛이라면 충분히 괜찮았다.
그런데 복숭아가 이렇다.
자잘한 멍은 그렇다고 치고 거의 상하다시피 한것이 세 개나 된다. 온전한 모양을 한 것은 하나도 없다.
배송의 문제인것 같다.
딱딱한 복숭아가 상자에 꽉 차있으니 지들끼리 부딪히고 그러면서 멍이들어 물러진것 같다. 습도가 가득한 날씨도 한몫 했을것이다.
속상했다.
맛있는 복숭아를 야금야금 두고 먹을 생각했는데 상태가 좋지않아 속상했다. 환불요청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배송중에 복숭아가 망가진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걸 힘들게 농사지은 농부님이 왜 다 책임져야 하는가? 속상했다.
농작물은 공산품이 아니다.
날씨가 이렇다고해서 수확을 안할수도 배송을 안할 수도 없다. 그럼 나무에서 계속 익어가고 상자에서 썩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복숭아는 원래 상처가 잘나고 물러지기도 쉬운 과일이다. 소비자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언택트 시대라 택배배송을 해야한다는 것을 복숭아가 배려할리 만무하다. 기후위기로 날씨가 이상한것도, 배송중 일어나는 일들도 이렇게 농부님이 다 책임져야하는 시스템이 계속되면 곧 복숭아도 못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센터에 컴플레인을 올렸다가 조금 뒤 환불요청을 취소했다.
‘소비자’ 로서의 나는 내가 지불한 돈 만큼의 댓가를 받지 못하면 화가난다. 그런데 독한 농약 치지 않겠다고 손으로 벌레를 잡아가며 고생한 농부님은 농사짓기 어려운 날씨와도, 그로인한 병충해 피해와도, 판매시스템을 가진 플랫폼과도, 배송상태와도, 또 나같은 소비자와도 싸워야한다.
같이 책임(? 이라기엔 너무 거창하지만)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마트에서 상처하나 없이 매끈한 예쁜 농작물만 골라 담고, 뒤쪽에 있는 걸 굳이 꺼내 비교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재배되었는가는 안중에도 없이 가격에만 신경쓰던 나를 돌아본다.
자연에 기후에, 농사에 조금 더 관심이 생긴 지금은
날이 궂으면,
과일이나 야채의 맛이 좋으면,
반대로 맛이 떨어지면,
산지의 날씨와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농사는 농사꾼과 소비자가 같이 짓는 것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이는 상태로만 판단하지 않고, 늘 그 이면과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지점을 생각하며 조금은 손해를 보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로만 살다 죽지 않게돼서 다행이다.
동반자로, 이웃으로, 살아야지.
속상함도 맞들면 좀 나아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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