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위해서는 소비를 줄여야 하지만 소비를 줄이면 옷을 팔고, 가구를 팔고, 책을 파는 이웃들의 소득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계속해서 물건을 소비하고 폐기하면 우린 더이상 지구에서 살 수도 없다. 경제가 먹고사는 문제라면 환경은 죽고 사는 문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을 외친다.
성장이 곧 생존이다. 자본주의에서 성장은 당연히 전제된 일이고 성장을 멈춘다는 말은 곧 퇴보를 의미한다. 그 성장엔 도달해야할 목표도 끝도 없다. 그래서 흔히 자본주의를 브레이크 없는 열차에 비유한다. 하지만 모든 성장엔 동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성장의 동력은 무자비한 자원의 추출과 착취에 있었다.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멈추지 않으면 폭발해버릴 열차에 타고있다. 성장을 멈추는 것이 가능할까? 성장을 멈추는 것이 과연 퇴보일까 궁금했다.
성장을 멈추면 자급자족이나 원시시대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일까? 내가 버는 소득이 지금의 상황에서 더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인건가? 솔직히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다가오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런 의문들을 역사적&철학적 사실로 충실히 근거를 대며 속 시원하게 대답하고 있다.
탈성장은 경기침체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방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에 나오는 애벌레들처럼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도, 왜 오르는지도 모르고 그냥 오르는 것이 목표인 삶을 살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건 우리가 아닌 이 시스템의 문제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와 성장이라는 강박, 그리고 좋은 삶에 대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Gdp는 결코 제대로 된 지표가 아니다.
우리가 성장의 지표로 생각하는 GDP는 결코 제대로 된 지표가 아니다.
136p. 당신이 목재를 얻기위해 숲을 쓰러뜨리면 GDP는 올라간다. 근무일을 늘리고 은퇴 연령을 미룬다면 GDP는 올라간다. 오염으로 인해 병원 이용이 늘더라도 GDP는 올라간다. 하지만 GDP는 비용 계산을 포함하지 않는다. GDP는 야생동물의 서식지나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숲의 손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과중한 일과 오염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가하는 고통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GDP는 나쁜 것들을 누락할 뿐만 아니라 좋은 것들도 다수 누락한다. GDP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경제활동을 계산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이 인간의 삶과 행복에 중요하더라도 말이다. 당신이 먹거리를 재배하거나 집을 청소하고 나이 든 부모를 돌보더라도 GDP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GDP는 당신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기업에게 돈을 지불할 때만 계산한다.
우리가 목메는 경제성장(GDP 성장의 혜택)의 혜택은 가장 부유한 1-2퍼센트에 집중된다. ‘낙수효과는 커녕 수증기 효과나 될까?’ 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
우리가 목메는 경제성장(GDP 성장의 혜택)의 혜택은 가장 부유한 1-2퍼센트에 집중된다. ‘낙수효과는 커녕 수증기 효과나 될까?’ 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2.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식민주의 적이다.
87p.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었던 폭력의 순간들을 단지 일탈로 경시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순간들은 자본주의의 기반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성장은 새로운 개척지를 필요로 하며 늘상 개척지로부터 가치를 뽑아내고는 가치에 대한 지불은 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는 성격상 본질적으로 식민지주의적이다.
145p. 자본주의하에서 성장은 인간 사회 조직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모두를 볼모로 잡는 정언명령이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산산이 부서진다. 우리는 구속복을 입고 있다. 전세계 정부들이 축적이라는 쳇바퀴를 영속화하는 데에 국가의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34p. 아마존을 불태우는 소고기 회사들, 총기규제에맞서 로비하는 무기회사들, 기후변화 부정론에 자금을 대는 석유회사들, 점점 더 정교해진 광고 기술로 우리의 삶에 침투해 사실상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게 만드는 판매업체들을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예외적인 ‘썩은 사과’가 아니라 자본의 철칙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축적이라는 정언명령을 중심으로 점점 더 구조화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3. 성장=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장은 좋은 삶과 관계가 없다.
239p.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성장은 ‘비경제적’이 되기 시작한다. 복지보다 해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수많은 측면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고소득 국가에서 성장추구가 지속되면서 불평등과 정치적 불안정성을 격화시키고 있고, 과로와 수면부족에 따른 스트레스와 우울증, 오염으로 인한 건강 악화, 당뇨병과 심장병 등의 문제들을 키우고 있다.
240-241p. 아메리칸 드림은 소득과 소비가 행복으로 가는 티켓이라고 약속한다. (…)미국에서는 1인당 GDP가 겨우 1만5천달러 였을때인 1950년대에 행복 비율이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 미국인들의 평균 실질소득은 네배가 되었지만, 지난 반백년간 행복은 정체하거나 심지어 하락했다. (…) 불평등한 소득분배를 가진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덜 행복한 경향을 보인다. 불평등은 불공정하다는 느낌을 만든다. (…) 우리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까닭은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웃에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45p. 가장 부유한 나라들의 특징인 넘치는 GDP로는 정말 중요한 그 어느것도 얻지 못한다.
규칙에 맞춰 행동해서는 세계를 구할 수 없어요. 규칙이 바뀌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레타 툰베리
자본주의의 해악과 현재 모든 것을 바꿔야만하는 우리상황의 급박함은 이해해도 성장을 멈추면, 그래서 곧 자본주의를 벗어나면 삶이 어떻게 변할까? 디스토피아 영화의 한장면처럼 힘들어지는건 아닐까? 염려하던 내게 이 책의 후반부는 아주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4. 불평등 해소, 정의가 곧 기후위기 해결의 열쇠다.
249p. 인간복지에 관한한 중요한 것은 소득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접근권이라는 측면에서 무언가를 살 수 있는 소득이다. 즉 소득의 ‘복지 구매력’ 이 중요하다. (…) 사람들의 접근성을 공공 서비스와 기타 공공재들로 확대함으로써, 사람들의 소득이 갖는 복지 구매력을 향상시키고, 어떤 추가적 성장의 필요 없이도 모두가 번영하는 삶을 만들 수 있다. 정의는 성장의 정언명령에 대한 해독제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열쇠다.
246p. 사회가 평등해질수록, 사람들은 높은 소득과 화려한 지위재를 추구하야 할 압력을 덜 느낀다. 사람들을 영속적인 소비주의의 굴레에서 해방시킨다. (…) 불평등 감소는 또한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생태적 영향을 줄인다. (…)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0%가 1990년 이래 세계 총탄소배출량의 절반 이상에 책임이 있다. (…) 최상위 부유층의 소득을 줄이는 모든 정책은 긍정적인 생태적 효용을 가질 것이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람들이 타인과 비교하며 더 많은 돈을 버는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좋은 삶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에서 나는 지금의 기후위기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라면 달리는 자본주의 열차를 멈출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에 대한 글을 읽으면 늘 우울하고 좌절감을 느꼈는데 더 평등하고 나은 삶을 위한 기회로 우리 모두가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게되었다.
261p. 기후위기는 관점을 바꾼다. 우리에게 세계경제의 잔인한 불평등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우리를 정치 투쟁의 영역에 밀어넣는다.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총량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관념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누구를 위한 어떤 목표를 위한 성장인지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돈은 어디로 가는가? 그로부터 누가 득을 보는가? 생태계 붕괴의 시대에 전체산출의 4분의 1 가까이가 백만장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경제를 정말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5.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로 가는길: 우리는 성장없이도 번영할 수 있다.
1단계: 계획적 진부화를 끝내기
(2년 마다 바꿔야 하는 내 스마트 폰이 10년동안 튼튼하게 쓸 수 있다면 나는 대 환영이다!!! )
2단계: 광고줄이기
(두말하면 입아플것 같다. 우리 모두 지나친 광고에 지쳐있지만 광고를 보면 필요없는것도 사게된다. )
3단계: 소유권에서 이용권으로
(공유경제의 확산은 환영이다. 전기자동차를 빌려 탈 수 있다면 나는 당장에 경유 자동차를 없애고 자동차 없이 살고싶다. )
4단계: 식품 폐기 없애기
(지금도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실천 중 하나다. 이는 기후위기 문제 뿐 아니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생각한 세계시민으로서도 해서는 안되는 낭비다.)
5단계: 생태계를 파괴하는 산업의 규모 줄이기
(소고기 농가에게 주는 보조금을 폐지하고, 항공기를 자주타는 사람들에게 마일리지 혜택이 아닌 추가요금을 부가하고, 로컬경제로의 전환을 제시한다. 인간 복지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고도 물질 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이다. )
포스트 자본주의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고 간단한 일도 아니다. 총체적으로 협력을 이뤄 현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는 세력들과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포스트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는 일이며 생태적으로 가는길이고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세계에서 평형과 균형을 이루려는 생활방식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더 적은것이 더 많은 것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지 않고 , 내가 가진것을 하찮고 구질구질하게 느끼지 않으면서 자연과 이웃과 소통하며 더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자본주의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 역사적 배경(봉건제 이후 인클로저 운동), 철학적 사상(데카르트의 이론) 에 대한 설명을 물론이고 그동안 자본주의가 자연과 여성, 남반구의 가난한 국가들을 어떻게 착취했는지, 그렇게 성장이란 허상에 갇혀 우리가 해온 결과가 무엇인지(생태계 파괴와 부자들 배불리기 그리고 축적된 자본을 투자해 다시 반복) 그래서 지구는 지금 어떤 경지에 이르렀고 우리가 탈피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등을 아주 조목조목 이야기 하고 있다. 내용이 방대하고 중요한 말들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 지 모를 지경이다.
희망적인것은 우리가 이 상황을 깨닫고 변화를 추구한다면 포스트 자본주의는 매우 생태적이며 생명을 존중하는 시스템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를 실현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기후위기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사실도 참 멋지다.
이 책에선 구체적 방법을 명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질문을 던질때 우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비루한 내 글 때문에 이 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까 염려된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류의 책은 아니지만 기후위기에 사는 우리 모두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더더욱 읽어보면 좋겠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기술도,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도 아니다.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We are in the beginning of a mass extinction, and all you can talk about is money and fairy tales of eternal economic growth. How dare you!) 돈과 끝없는 성장 이라는 동화에서 벗어나 우리가 공존할 방법을 찾아 행동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질문을 던져야 한다.
379p 탈성장은 땅과 사람 심지어 우리 마음의 탈 식민지화를 나타낸다. 커먼즈의 인클로나 해체, 공공재의 탈상품화, 노동과 삶의 탈집약화를 나타낸다. 인간과 자연의 탈물화를, 그리고 생태 위기의 가속화 중단을 나타낸다. 탈성장은 덜 취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결국 가능성의 지평 전체를 열어젖힌다. 탈성장은 우리를 결핍에서 풍요로, 추출에서 재생으로, 지배에서 호혜로, 외로움과 분리에서 생명이 약동하는 세계와의 연결로 데려다준다. 결국 우리가 ‘경제’ 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서로와 맺는, 그리고 생명세계의 나머지와 맺는 물질적 관계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관계가 어떠하기를 바라는가? 지배와 추출의 관계이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호혜와 돌봄의 관계이기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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