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구멍뽕뽕에 다 물러진 뒷면과 대비되게 예쁜 면을 한입 베어 먹었더니 꿀물이 뚝뚝 떨어졌다. 전날에도 비가오는 바람에 싱거워진 복숭아라는데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 어디 내놔도 너무 맛있는 복숭아다. 세상에…. 아직 복숭아를 한개도 따지 않았는데 의지가 불타올랐다.
날씨가 흐려 모자없이 작업하기에도 더 좋았다.
모기가 엄청나게 달라들었지만 베로니카님이 주신 농부수건 덕분에 한방도 안물렸다. 목에 둘둘 감아 귀에서 앵앵대는 모기로부터 방어하고, 흐르는 땀은 수건 끝으로 닦으며 복숭아를 땄다.
유기농 복숭아 수확의 현장
통통한 복숭아를 잡고 살짝 비틀기!
(이건 너무 꽉 묶었던지 봉지가 잘 안빠졌다 ㅋㅋ)
벌레먹은 복숭아도 예쁨
벌레먹은 복숭아엔 벌레의 흔적과 함께 끈적한 액체가 있는데 이건 복숭아가 자기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흘린 진물 같은거란다. 너무 신기한 자연의 힘!! 벌레먹은게 모양은 좀 없어도 더 맛있다.
하얀속살의 백도
짜잔~~~
백도는 수확기간이 길어서 크고 잘 익은것 부터 하나씩 따는거라고 했지만 나는 수확하러 다시 내려올 수 있는 농부가 아니니 몽땅 땄다. 그런데 아오리 사과처럼 덜익은 초록복숭아도 아삭하니 달고 맛있었다.
‘이게 유기농의 힘인건가? 얘는 뭔가? 왜 이러지?
지금까지 내가 먹어왔던 복숭아는 무엇??? 덜 익은게 맛있으면 반칙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게하는 복숭아.
벌레먹은것, 멍든것, 떨어진 것, 작은것 하나까지 모두 소중히 챙겨왔다.
황도는 너무 잘 익어서 그런지 비가와서 그런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것이 많았다. 아직 벌레가 공격하기 전이거나 상태가 괜찮은것들을 골라 주워왔다. 또 현주님이 예쁜 황도를 맛보라고 주시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참 감사했다.
나는 5월에 모내기 할 때 차출되어 갑자기 복숭아 멤버가 됐지만 사실 1년 농사를 짓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많다.
작년부터 땅을 비옥하게 하기위해 헤어리배치 씨도 심고, 복숭아 가지도 치고, 멧돼지가 못먹게 밭 주변에 울타리도 치고, 풀도 여러번 베고, 은행을 썩힌 액비도 주고, 부자재 구입이며 복숭아 봉지싸기, 기타등등. 그 많은 노동과 돌봄에 참여한 것이 거의 없어 사실 날로먹은 첫 복숭아 농사다.
크고 예쁜 복숭아를 수확하고 있자니 참 민망하고 죄송했다.
수확 이후 해야하는 노동엔 열심히 와서 내년엔 그래도 내 몫은 했다는 느낌으로 복숭아를 따야겠다. ㅎㅎ
자기에게 해가 될 것이 없다는 걸 알고 모여든, 생물다양성이 살아있는 현장도 느끼고,
가지 위 쪽으로 달린 복숭아는 새들이 다 먹어치운다는 교훈에다 남음제로의 중요성을 배우고, (하나만 파먹자! 새들아)
농약도 제초제도 많이 하는 근처밭의 복숭아는
멧돼지가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것도 금방 썩지 않고 달라드는 벌레도 많지 않다고…
<즐거운 불편> 에서 ‘동물도 먹지 못하는것을 인간이 먹고 산다’ 고 했던 구절이 떠올랐다.
관행농을 비난하는것이 아니다. 모든것을 외주준 도시생활자로서 내겐 그럴 자격조차 없다. 다디달고 향긋하며 무르기까지한 복숭아를 이렇게나 멀리서 멀쩡히 먹으려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많다.
다만 유기농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자연스런 생태의 순환을 직접 목격하니 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반 생태적이며 도시 중심의 생활이 얼마나 인공적인지 또 인간은 얼마나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참 많이 느끼게 되었다.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비바람을 이기고 벌레의 공격도 방어하고, 스스로를 치료하며 햇빛도 받으며 크려면 당연히 그 생의 흔적이 남는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진정 아름답다.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 예쁜 농작물을 좋아하지 않고 벌레먹은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걸 알면, 그래서 구입할때 공장에서 찍어낸듯 반듯한 것만 찾지 않아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소비는 그래서 투표다!!
복숭아 병조림 떼샷 ㅎㅎ 김치통 하나 더 있는건 안비밀
예쁜 것들만 골라담아 나눔도 준비했다.
복숭아는 참 좋은 과일인 것 같다.
욕심부려 혼자 다 먹으려고 해도 장기 보관이 어려워 나눌 수밖에 없게 만든다. ㅎㅎㅎ
그리고 나눔은 더 큰 기쁨이 된다.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들, 금방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병조림을 나눠야지.
현대사회의 문제, 특히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적게 먹고, 적게 가지고, 많이 나누고 풍요롭게 어울리는 일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욕심많은 나에게 복숭아농사는 내려놓으라고, 나누라고,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함께사는거라고 가르쳐주는것 같다.
생초보 도시농부의 달랑 한그루 복숭아 농사는 이만하면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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