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생초보 도시농부의 텃밭일기]달랑 한그루 유기농 복숭아 농사일기(22.8.15.)







복숭아 밭에 복숭아가 익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수확의 철이 돌아온 것이다.


모내기 할 때 가서 갑자기 시작한 복숭아 농사.

멀다는 핑계로 달랑 세번가고 수확한다😅😅.


서울에 내린 폭우가 아랫지방으로 내려가서 비가 많이 올거라길래 걱정했는데 다행히 흐리기만 하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내 나무는 주인이 자주 돌보지 않은것을 티라도 내듯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며칠동안 여기도 비가 오다말다를 반복했다더니 가지도 축축하고 복숭아 봉지도 젖어있는것이 많았다.



심지어 멧돼지가 내 복숭아 나무를 부러뜨려놓았다. 힘이세고 똑똑한 멧돼지는 나무를 들이받아 가지를 부러뜨리고 가지가 땅에 떨어지면 복숭아를 편하게 먹는다고 한다.


향이좋고 잘 익은 복숭아만 귀신같이 골라서 먹는다고 하니 속상하지만 내 나무는 인정받은걸로.. ㅠㅠ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멧돼지 울타리를 작업하시고 우리와 비교도 되지않게 전문가이신 산신령님이(최이장님) 땅에 떨어진 복숭아를 주워주셨다. 방금 떨어졌어도 한시간만 지나면 개미들이 공략해서 초토화 된다며, 잘 익은것이 떨어지는 거라 더 맛있으니 반대편을 먹어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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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구멍뽕뽕에 다 물러진 뒷면과 대비되게 예쁜 면을 한입 베어 먹었더니 꿀물이 뚝뚝 떨어졌다. 전날에도 비가오는 바람에 싱거워진 복숭아라는데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 어디 내놔도 너무 맛있는 복숭아다. 세상에…. 아직 복숭아를 한개도 따지 않았는데 의지가 불타올랐다.


첫 복숭아 한알 수확!


갬동적~~~ 😍😍😍

봉지 씌우기에 비해 복숭아를 따는건 금방이었다.

살짝 비틀기만해도 잘 따졌다. 봉지를 너무 꽉 씌운건 잘 빠지지 않아 복숭아 농사에서 봉지싸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날씨가 흐려 모자없이 작업하기에도 더 좋았다.

모기가 엄청나게 달라들었지만 베로니카님이 주신 농부수건 덕분에 한방도 안물렸다. 목에 둘둘 감아 귀에서 앵앵대는 모기로부터 방어하고, 흐르는 땀은 수건 끝으로 닦으며 복숭아를 땄다.


유기농 복숭아 수확의 현장


통통한 복숭아를 잡고 살짝 비틀기!

(이건 너무 꽉 묶었던지 봉지가 잘 안빠졌다 ㅋㅋ)


벌레먹은 복숭아도 예쁨

벌레먹은 복숭아엔 벌레의 흔적과 함께 끈적한 액체가 있는데 이건 복숭아가 자기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흘린 진물 같은거란다. 너무 신기한 자연의 힘!! 벌레먹은게 모양은 좀 없어도 더 맛있다.


하얀속살의 백도

봉지를 벗기고 뽀얀 모습을 드러내면 얼마나 예쁜지… 향도 너무 좋다.


봉지 쌀 때는 내내 툴툴거리던 곰도 수확하는건 재미있는지 열심히 땄다. 나는 따온 복숭아를 크고 좋은것, 덜 익은것, 벌레먹은것 등으로 분류하느라 따는건 곰이 거의 다했다. ㅎㅎ



멧돼지가 부러뜨린 나무에 달린 복숭아도 살뜰히 챙겨왔다. 아주 크고 예쁜걸로 부러뜨려놨….

이노므 멧돼지…



집에서 올 여름 사먹은 복숭아 박스와 충전재를 버리지 않고 모아 가져갔다. 손잡이가 달려서 편리할 것 같은 박스도 챙겼다. ‘복숭아나무 달랑 한그루인데 너무 박스를 많이 챙기는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산!!!



처음엔 차곡차곡 예쁘게 담다가 나중에 너무 많아서 차에 있는 장바구니도 다 나왔다고 한다. 이럴줄 알았으면 박스도 충전재도 더 챙기는건데…



짜잔~~~


백도는 수확기간이 길어서 크고 잘 익은것 부터 하나씩 따는거라고 했지만 나는 수확하러 다시 내려올 수 있는 농부가 아니니 몽땅 땄다. 그런데 아오리 사과처럼 덜익은 초록복숭아도 아삭하니 달고 맛있었다.


‘이게 유기농의 힘인건가? 얘는 뭔가? 왜 이러지?

지금까지 내가 먹어왔던 복숭아는 무엇??? 덜 익은게 맛있으면 반칙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게하는 복숭아.


벌레먹은것, 멍든것, 떨어진 것, 작은것 하나까지 모두 소중히 챙겨왔다.


황도는 너무 잘 익어서 그런지 비가와서 그런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것이 많았다. 아직 벌레가 공격하기 전이거나 상태가 괜찮은것들을 골라 주워왔다. 또 현주님이 예쁜 황도를 맛보라고 주시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참 감사했다.


나는 5월에 모내기 할 때 차출되어 갑자기 복숭아 멤버가 됐지만 사실 1년 농사를 짓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많다.


작년부터 땅을 비옥하게 하기위해 헤어리배치 씨도 심고, 복숭아 가지도 치고, 멧돼지가 못먹게 밭 주변에 울타리도 치고, 풀도 여러번 베고, 은행을 썩힌 액비도 주고, 부자재 구입이며 복숭아 봉지싸기, 기타등등. 그 많은 노동과 돌봄에 참여한 것이 거의 없어 사실 날로먹은 첫 복숭아 농사다.


크고 예쁜 복숭아를 수확하고 있자니 참 민망하고 죄송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떨어진 복숭아 봉지 다 줍고, 무성했던 풀도 베어냈다. 산신령님이 ‘내 나무 밑에만 하지말고 주변풀도 베면서 복을 지으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주변 나무들이랑 깜빡잊으셨다는 미란님 나무밑 풀도 베어냈다.


그제서야 훤~ 해진 나무 ㅎㅎㅎ 풀 숲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풀베기 비포 & 애프터

수확 이후 해야하는 노동엔 열심히 와서 내년엔 그래도 내 몫은 했다는 느낌으로 복숭아를 따야겠다. ㅎㅎ



몇 번 가지도 않은 달랑 한그루 복숭아 농부지만유기농 복숭아 농사를 이어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경험하고 배운것들이 많다.


나보다 먼저 맛본 난폭한 멧돼지 손님 뿐 아니라 이렇게 땅의 친구들이 포식하는 것도 목격하고,



자기에게 해가 될 것이 없다는 걸 알고 모여든, 생물다양성이 살아있는 현장도 느끼고,




가지 위 쪽으로 달린 복숭아는 새들이 다 먹어치운다는 교훈에다 남음제로의 중요성을 배우고, (하나만 파먹자! 새들아)

개미도 포식중

떨어진 복숭아를 먹을때 달콤한 부분을 공략하는 영리한 개미군단도 관찰했다.



농약도 제초제도 많이 하는 근처밭의 복숭아는

멧돼지가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것도 금방 썩지 않고 달라드는 벌레도 많지 않다고…


<즐거운 불편> 에서 ‘동물도 먹지 못하는것을 인간이 먹고 산다’ 고 했던 구절이 떠올랐다.


관행농을 비난하는것이 아니다. 모든것을 외주준 도시생활자로서 내겐 그럴 자격조차 없다. 다디달고 향긋하며 무르기까지한 복숭아를 이렇게나 멀리서 멀쩡히 먹으려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많다.


다만 유기농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자연스런 생태의 순환을 직접 목격하니 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반 생태적이며 도시 중심의 생활이 얼마나 인공적인지 또 인간은 얼마나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참 많이 느끼게 되었다.




차에 실었더니 이만~~ 큼.

장화를 벗어둔 공간까지 아주 꽉차서 더 많았으면 가져오지도 못할뻔했다.

한그루 나무가 주는 엄청난 수확물…


그 중에 우리가 ‘상품성’ 있다고 말하는 모양의 복숭아는 전체의 반정도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땅의 몫과 식물, 비인간동물들의 몫까지 다 인간이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일’ 이 아니라 ‘상품’이 되려면 그래야하니까…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비바람을 이기고 벌레의 공격도 방어하고, 스스로를 치료하며 햇빛도 받으며 크려면 당연히 그 생의 흔적이 남는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진정 아름답다.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 예쁜 농작물을 좋아하지 않고 벌레먹은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걸 알면, 그래서 구입할때 공장에서 찍어낸듯 반듯한 것만 찾지 않아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소비는 그래서 투표다!!


집에와서 멍들고 벌레먹은 복숭아 상태가 안좋아지기 전에 병조림도 만들고 잼도 만들었다.


새벽부터 문경에 다녀오느라 피곤하고 날 더운데 푹푹 끓이느라 애먹었지만 기분좋았다.



복숭아 병조림 떼샷 ㅎㅎ 김치통 하나 더 있는건 안비밀


예쁜 것들만 골라담아 나눔도 준비했다.




복숭아는 참 좋은 과일인 것 같다.

욕심부려 혼자 다 먹으려고 해도 장기 보관이 어려워 나눌 수밖에 없게 만든다. ㅎㅎㅎ


그리고 나눔은 더 큰 기쁨이 된다.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들, 금방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병조림을 나눠야지.


현대사회의 문제, 특히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적게 먹고, 적게 가지고, 많이 나누고 풍요롭게 어울리는 일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욕심많은 나에게 복숭아농사는 내려놓으라고, 나누라고,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함께사는거라고 가르쳐주는것 같다.


생초보 도시농부의 달랑 한그루 복숭아 농사는 이만하면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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