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프로살초마 탈출기




 

모종을 사다 심어준 바질

식물 무식자인 나는 식물만 사다 놓으면 다 죽였다.


프로 쇼핑러에 프로충동구매러 이기도 했던지라 우연한 기회에 식물을 발견해서 예쁘면 사다놓고 그저 그 자리에 그 모양 그대로 있어주길 바랐던것 같다. 그렇게 무관심으로 죽이고, 과습으로 죽이고, 말려죽이고, 햇볕에 태워죽이길 여러해... 나는 스스로를 화초 키우기엔 젬병인 ‘프로살초마, 연쇄살초마’라 칭했다.  


반그늘에서 키워야 하는 애를 햇볕에 내놨다가 잎이 탔다. 아직도 고생중인 초록이....


화훼특구인 과천에 사는지라 오며가며 화원을 많이 보게 된다. 어느해 봄날, 분위기에 휩쓸려 바질을 사다 심은적이 있었다. 센스있는 화원 사장님이 예쁜 세라믹 화분을 싸게 주셔서 길다란 화분을 두 개나 사다 바질을 키웠다. 


수확한 바질과 루꼴라로 해먹은 음식들

화분과 더불어 그 안을 채울 흙도 샀고 바질 모종을 옮겨심어 창틀에 두었다. 처음심은 바질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물 줄 때마다 풍기는 향도 좋았고 키우는 재미도 있었다. 무럭무럭 자란 바질은 피자에 샐러드에 또는 장식으로 사용되고도 풍성히 남아 바질페스토가 되어 주었다. 

바질페스토와 장식으로 쓴 바질잎


더 이상 바질을 사용할 요리를 못찾아낸 나의 상상력 부족으로 그 후엔 수확하지 않았고 키만 쑥 자라다 꽃을 피워 씨를 거두기까지했다. 프로살초마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식물키우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해, 겨우내 그대로 놔뒀던 창틀화분에다 새 모종만 사다 심어주었다. 풍년이었던 작년의 기억을 더듬어 올해도 잘 자라리라 굳게 믿었다. 이상하게도 작년보다 성장이 더딘것 같고 간간히 잎에 무늬 같은게 생기거나 오그라 드는 잎도 나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바질은 자라주었고 향신료로 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세번째 되는 해, 이제 다른건 몰라도 바질은 잘 키울 수 있다고 믿고 역시 모종만 사다 같은 화분에 심었더니 잎도 제대로 커지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모종이 불량인가 싶어 더 크고 비싼 모종을 사다 심었다. 이번엔 잎에 이상한 무늬가 생기고 색이 변하고 벌레도 보이는듯 하더니 이내 모두 죽었다. 식물이라도 집 안에 살아있던 생명이 죽는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빈 화분을 보거나 바짝 마른 가지가 스산하게 서있는 화분을 볼 때마다 내 실패를 마주하고 선 느낌이라 영 별로였다.


그 기분을 또 느끼고 싶지 않아서 한동안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 


제로웨이스트를 하며 관심이 가는 환경 분야가 넓어지게 되었고 농약과 제초제의 유해성을 알게되면서 난 유기농 빠순이가 되었다. 친환경 작물 중에서도 무농약과유기농은 무슨 차이인지. 화학비료를 하는것과 안하는것은 무슨 차이인지 등 유기농에 대해 점점 알아가면서 식물을 대하는 태도와 창틀텃밭에 범했던 심각한 잘못에 대해서도 점점 깨달았다. 


식물은 편식쟁이였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듯 작물마다 식성이 달랐다. 그리고 땅은 식물의 집이자 밥이자 엄마이며 무덤이었다. 식물은 대표적으로 질소와 인 성분을 좋아하는데 땅에 그 성분만 무한히 많을리 없다. 그 성분들이 있어야 키도 자라고 열매도 맺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넣어주는것이 바로 비료였다. (그래서 잘 자라기는 하나 비료는 식물의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고농도로 인공의 정제를 거쳐 화학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환경과 사람에게 절대 좋지않다.)  


보통은 같은 작물을 연작으로 지을 수 없으며 몇 년이 지나면 땅에게도 휴식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비옥한 땅 이라는 말은 식물에게 줄 영양분이 풍부한 땅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나는 한 번 비옥한 땅은 영원히 비옥한 땅일줄만 알았던 것이다. 화분같은 작은 토양의 영양분은 얼마나 쉽게 고갈되었을까? 바질이 2년이나 커준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코로나19 덕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올 해 바질과 다른 허브들을 키우는 창틀텃밭을 다시 시작했다. 이제 식물이 살아있는 인테리어 장식쯤이 아니라 한 생명으로 보인다. 해를 봐야 사는 애들을 내가 티비 옆에 두고 싶다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란걸 깨달아 가고있다. 


새로 심은 허브들은 유기배양토 새 흙으로 모두 갈아주고 작물의 특성에 맞게 햇빛에 직접 닿게도, 창문 안쪽으로 빛이 슬쩍 드는 반그늘에도, 바람이 잘 통하는 창가에도 두었다. 


물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도 감을 잡는중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달에 한 번 무슨 식후 30분 약 먹듯이 규칙에 맞게 주는것이 아니었다. 계절에 따라서도, 날씨가 건조했던지 비가 왔던지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겉흙이나 또는 흙을 1-2cm 파낸 곳을 만져보고 상황에 따라 준다. 해보니 같은 작물이라도 남향 창틀에 둔 바질과 서향창틀에 둔 바질이 다르고 화분의 재질에 따라서도 달랐다. 




물도 수돗물을 바로 줘야하나? 정수물을 줘야하나? 고민이되던차에 읽은 책에서 빗물에는 자연적으로 질소 성분이 있어 식물에 더 좋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진짜 놀라웠다. (자연의 순환은 완벽하다!) 아직은 비올때 비를 맞게 해준게 다지만 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쌀뜨물이나 콩나물 기른물, 유기농 채소 씻은물 같은것도 버리지 않고 화분에 준다. 물도 절약하고 식물에게 영양도 주고 1석2조가 아닐 수 없다.


잘 자라주고 있는 창틀텃밭 허브친구들

아직까지 나의 창틀텃밭 친구들은 매우 잘 자라고 있다. 



식물의 특성, 땅의 성질, 기본도 모르면서 더 비싼 모종을 사다 심는 엉뚱한 처방을 내놓은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자연의 이치, 순환의 원리, 연결의 고리, 그 모든것은 무시한채 더 비싼 해결책을 찾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 본성을 이해하고 따르는게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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