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기후위기/살리는 식습관]얼마나 더 묻을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물을 것인가? (산안마을 동물복지농장 예방적 살처분에 대하여...)




 


장가르기 해서 간장을 빼는 일반 된장과 달리 강원도는 간장을 빼지않는 막장을 많이 담근다.우리 어머님 된장은 참 맛있다.

그래서 된장색도 까맣고 일반된장과 다른 매력이 있다.



나는 언젠가 이 도시에 살지 않을 수 있는 날이되면 간장 된장 고추장 식초 다 만들어 먹고 때마다 나는 것을 갈무리 하며 자연의 시간에 맞춰 천천히 사는 삶을 꿈꾸기 때문에 지난주말 어머님이 된장을 담그신다는 소식을 듣고 배워두려고 얼른 내려갔다.

지금 찍어먹어도 맛있는 막장을 만들어 잘 숙성되도록 주문을(‘맛있어져라’) 외워두고는 날이 좋아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호수 근처 습지에서 이 오리들을 만났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찾아보니 이 오리는 흰뺨 청둥오리라고 한다. 겨울이면 날아오는 대표적인 철새이자 일부는 우리나라에 터를 내린 텃새.

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제 거의 매해 조류독감 발생 소식을 듣는다.


조류독감은 습지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철새들이 농지로 모여들어 닭이나 오리 같은 가축화된 가금류와 만나면서 시작된 일인데, 그 옆에 산업화된 가금류 농장까지 있으면 최적의 생태환경을 갖추게 된다.


내가 산책한 이 곳은 호수 옆으로 난 작은 냇물이었다. 좁고 깊지도 않은 이 정도의 습지만 있어도 철새는 사진처럼 평화로이 지낼 수 있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에게 좋은 추억까지 주면서 말이다. 이 작은 습지를 메우고 죄없는 그들의 서식지를 빼앗은건 우리다.


작은 습지라 할지라도 없어질 경우 생태적 손실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또 작은 습지가 없어진다는 것은 습지 사이에 징검다리가 사라져 동물들이 왕래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김산하, <습지주의자> 중에서


갈곳이 없어진 철새들이 공장식 축산의 병든닭집단과 접촉하면서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이제는 조류독감에 대해 너무 자주 들어 ‘또 발생했나보다’ 하거나 ‘닭과 오리를 익혀먹으면 상관없다’ 정도만 생각하지만 조류독감은 대표적인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코로나와는 다르게 조류독감에 사람이 감염되면 치명율이 크고 변종 바이러스가 발현되면 그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그럼 이미 발생하고 있는 인수공통 전염병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200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조류독감이 발생한 이래로 우리가 하고 있는 거라고는 고작 대량 살처분과 예방 살처분뿐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는 점진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때는 인스턴트식 해답을 찾는 모순이 우리에게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산하, <습지주의자> 중에서


산안마을 동물복지 농장 닭들이 결국 ‘예방’ 살처분 되었다.




1984년부터 자연적인 사료를 먹이고 닭들이 모래목욕을 할 수 있도록 방사하여 키우는 산안마을. 그동안 수많은 조류독감들이 지나갔어도 산안마을은 이런 자연적인 환경을 닭들에게 제공하여 한번도 큰일을 겪지 않았다. 올해도 AI가 발생하여 검사를 계속했지만 단 한 번도 양성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권리로 건강한 닭들을 3만 7천마리나 가스를 주입해 죽이는가?


조류독감의 해결책으로 언급되는 ‘동물복지농장’ 의 건강한 닭들을 AI 발생농가와 1.8km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살처분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인간이 뭔데 무슨권리로 살아있는 건강한 닭들을 다 죽여놓고 조류독감이 없어졌다고 말하면 다인가?


해법은 철새나 닭, 오리를 죽이는 데 있지 않다. 바이러스 학자들은 조류독감에 대한 해법은 단일 가금류의 고밀도 사육을 줄이고, 전염병학적 • 생태학적 논리에 기초해서 농축산업을 재구축하고, 야생조류들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도록 전 세계적인 습지 복원 운동을 벌이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 ‘감기’ 에는 변종 조류독감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을(그러나 아직 살아있는) 살처분하는 장면이 나온다.





출처: 영화 <감기>

감독은 구제역 당시 돼지를 살처분하는 모습을 보고 이 장면을 떠올렸다며 다음과 같이 인터뷰 한다.


"영화를 준비할 때 구제역이 생겼다. 아무리 죽을 돼지라고 하지만 살처분 방식이 너무 끔찍했다. 우리가 돼지고기를 안전하게 먹기 위해 문제있는 돼지를 다 죽이는 건 말도 안되는 것"

(...)
"돼지들 중 '너희도 이런 꼴을 당하는 날이 올거다. 역전 될 걸'이라고 말하는 돼지가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이런 일이 생기면 인간이 인간에게 같은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공을 많이 들인 장면이고, 좋은 의미든 나쁜의미든 머리에 박히게 하고 싶었다"
영화 ‘감기’ 의 김성수 감독 인터뷰 중


같은논리를 대입한다면 ‘예방 살처분’ 대상인 나는 예방 살처분 당한 산안마을 닭들에게 몹시 감정이입이 되었다. 닭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억울하고 화가났다. 니들도 반드시 이렇게 될거라며 저주를 품고 갈 것 같았다.


조류독감은 이제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고 너무 강력해져서 계속 살처분 정책을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정당화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언제까지 묻을 것인가?

이제 더 이상 어디에 묻을 것인가?

침출수는 다 어쩔 것이며 그로인한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체를 묻은 땅에서 발생하는 곰팡이 (11800)

사체를 묻은 땅에서 흘러나오는 피(12000)

침출수로 오염된 땅 (2654)

매몰지 근처 하천에 흘러들어온 침출수와 물에 떠있는 구더기들(18000)


(출처: 문선희,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묻다> 중에서)

윤리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이러면 안되는 일이다.


더 이상 묻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조류독감은 왜 발생하는가?

우리는 왜 습지를 파괴했는가?

우리는 왜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을 키우게 되었는가?

공장식축산을 동물복지로 전환하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더 이상 묻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물어야 한다.


사태를 이지경까지 만든것도 우리지만 해결책을 가진것 또한 우리다. 우리의 변화에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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