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주로 취침용이라(가볍고 빛이나와서 누워서 읽기에 최적^^) 밧데리 충전을 미리미리 해놓치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갑자기 밧데리가 나갔을때 이 책을 집어들었다.나는 주로 전자책 밧데리가 나갔을때 좋은 책을 발견하게 되는것같다. ㅎㅎㅎ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제목
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내게 고전을 읽는일이란 늘 도전이었다. 우선 만만한 분량인 책들이 거의 없고... , 어려운 어투에다 번역의 한계,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나 시대배경을 잘 모른다면 말 그대로 글자만 읽고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때, 제목에서 어느정도 드러나지만 어렵고 긴 러시아 가족의 이름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안가서 처음으로 돌아가 몇 번이나 다시 읽기도했다.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가정사를 레포트 쓰려고 읽는구만 이름까지 복잡해서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자매품 브덴브로크가의 사람들도 있다 ㅋㅋㅋ)
그랬던 고전을 이 책에선 우리 삶과 아주 친밀하게 느끼게하면서 당장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사표쓰기 전에 읽는 책, 통장 잔고가 바닥일 때 읽는 책,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읽는 책, 남 욕이 하고 싶을때 읽는 책, (코로나로 지금처럼) 고립됐을때 읽는 책, 명절에 읽는 책 등등
차례만 읽고 있어도 왜일지 너무 궁금한 내용들이 저자의 위트와 섞여 재미있게 표현된다.
예를들면 이런식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사표 쓰기 전에 읽을 최고의 책이라면 <레미제라블>이다. 이유는, 전 5권에 달라는 방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무직자가 되면 곧 통장 잔고를 염려하게 될 테니, 아직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고 있을때 전권을 구비해 둘 필요가 있다.
(.....)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면 결심해보자. 나는 <레미제라블>을 다 읽은 다음 날 사표를 낸다. 이 책을 못 끝내면 퇴사도 없다. 퇴사를 하려면 이정도 기개는 가져야.....
2476페이지를 읽어 나가는 동안 당신은 인생, 사랑, 가족, 미래, 사회, 정치, 경제, 도덕, 법과 정의, 신과 종교를 사유할 충분한, 아주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당신은 오늘을 더 뜨겁게 살기로 결심하고 사직서에 서명을 할 것이다.
또는 내 삶의 혁명기가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음을 깨달아 조용히 사표를 찢어 버리고 출근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후회는 없을 것이다.
30-31p
ㅋㅋㅋ 책이 5권이나 되니 아직 회사를 다닐때 사둬야하고 2476페이지의 대작을 다 읽어야만 퇴사를 하기로 했으니......
정말 빵터지는 해법이면서 또 수긍이 가는 해법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레미제라블이 5권이나 되는 방대한 작품인지도 몰랐다. 분명 내가 중학교때 읽은 벽돌색 레미제라블은 성경책 만큼이나 두꺼워 진짜 벽돌같았는데 그것도 청소년용 축약본이었나보다.
또 결혼생활. 그 가부장적 모순의 부당함을 느끼는 이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이 반색할만한 내용도 있다.
명절에 읽어야 할 책으로 며느리들에게 <논어>를 추천했는데 이 소개에도 매우 통쾌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유교는 그 실천의 최소 단위 주체를 ‘결혼한 남성’으로 상정한다. 즉, ‘인’은 물론이거니와 ‘효’ 또한 ‘아들’이 맡아 해야 할 과제란 말씀.
(...)
어쨌든 효의 궁극적 행위 주체는 딸도 며느리도 아닌 아들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외려 ‘효도는 셀프’에 더 가깝게 읽히기도 한다.
(...)
고로, 현대의 며느리라면 명절을 맞아 시집에 가기 전에 <논어>를 읽어 두도록 하자. 비록 군자는 못 되어도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자는 말이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공자님 말씀마따나’ 고쳐보려고 애쓰고, 현대의 가정에 걸맞은 수신과 제가의 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숙고해보자. 이것이야말로 제사보다 시급한 며느리의 도리다.
156-157p
이런식으로 위트가 넘치는 추천이 있는가 하면 진지한 부분도 있다.
자존감이 무너진 날 읽을 책을 추천하면서 자존감을 세우는 방식으로 저자는 이런 해법을 내놓는다.
자존감은 외부적 조건이나 타자와는 무관한, 홀로 온전하고 독립적인 심리 상태가 아니라 언제나 사회 속에서, 관계 속에서, 타자들과 나 사이에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이것이 인성 교육이고 도덕 교육이다. 내가 나를 깎아내리지 않으려면 남에게 부당하게 폄훼당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들은 더 많은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71p
현대사회의 상처받은 영혼들이 많아서인지 ‘자존감’이 출판계에서도 화두다. 베스트셀러를 읽어보면 대부분은 그 사람을 무시하라거나 나의 길을 가라는 해법이라 별 도움이 안됐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었다. 그런데 저자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내 자존감을 지키려면 타인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매우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야기해서 좋았다.
그렇다. 우리는 상처받은 영혼이지만 누군가에겐 또 상처주는 영혼이다. 내가 주는 상처가 줄어드면 자연히 내가 받는 것도 줄어들것이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인 ‘내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기!!’ 가 더 강화되는 순간이었다.
이런식으로 저자의 추천을 쭉~ 따라가다보면 읽었던 책은 ‘아~ 그래? 그렇게도 읽을 수 있어?’ (고도를 기다리며의 해석이 너무 신선했다!! 와우! ) 하며 놀라거나, ‘맞아. 그랬었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안읽어 본 책(대부분)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있는 나를 발견한다.
고전은 인기있는 책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도 내가 원하는 책의 재고가 없어서 그냥 돌아오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전은 그 큰 서점에서도 대부분 재고가 1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고전이 읽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문장 하나하나가 다시 읽힌다는, 그래서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고전의 묘미가 궁금해진다.
이 책의 마지막 섹션은 ‘새로 시작하고 싶을때’ 이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더 더욱 이 책을 사랑하게 됐다.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 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너의 생각, 아니 누구의 생각이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없어. ..... 중요한 건 어제야.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
그럼에도 그걸 거듭하는 이유는, 내가 있는 여기가 더 좋아졌으면 바라기 때문이도, 아직은 살아서 이곳에 있고 싶기 때문이다. (...)
차가운 텅 빈 우주에 희망을 거느니 차라리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해하는 박테리아 연구의 조속한 성공을 기원하겠다. 반찬 그릇에 랩을 씌워 보관하는 습관을 버릴 것이고, 포장을 종이로 대체한다는 친환경 마케팅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패턴과 색상이 다른 에코백을 이것저것 바꿔 들고 다니며 지구를 지킨다고 착각하지 않겠다.(비닐봉지 한 장을 안 쓰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으려면 한 개의 에코백을 칠천백 일이나 사용해야한다.) 오늘 저녁밥은 남기지 않을 양만큼만 덜어 담을 것이고, 커피 원두를 사러 갈 때는 꼭 유리병을 챙겨가겠다.
그렇게 평범해도 시작은 무엇이든 새롭다.
254p, *는 코맥 매카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중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일상 뿐이다.
매카시의 말처럼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없을지라도 우리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많다. 그 일들이 모이고 쌓여 내일의 내가되고 우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평범해도 시작은 무엇이든 새롭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엔 고전이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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