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에세이]자연이라는 호사




 




날씨가 좋은 날엔 책한권을 들고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집근처 공원에 나간다.


한가로운 공원에 앉아 따뜻한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에 이런 호사가 다 있나 싶다.


‘굳이 돈버는데 열을 올려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게도 하는 시간이다.


책을 보고 있으면 개미가 지나가기도하고 나비가 찾아오기도 한다. 요즘엔 책 사이에 자꾸 뭐가 떨어지는데 보면 솜뭉치같은 꽃가루 덩어리다.




까치가 머리맡에서 깍깍 거리기도, 운이 좋으면 오리가족이 물 위에 착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가 온 뒤엔 땅 냄새가 진하고, 꽃이 피는 계절엔 달콤한 냄새가 나며 풀냄새가 그윽할 때도 있다.


하루도 같은날이 없는 나무와 풀들, 새들과 곤충들이 매일의 풍경을 달리한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날이 좋아 책 한권과 커피 텀블러를 싸들고 공원에 앉았다. 지금느끼는 풍경과 바람과 소리가 너무 좋아서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은 책과 더불어 한참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내가 앉은 자리에 떨어진 커피 봉지를 발견했다.





곱게 접어놓은것을 보니 일부러 버린건 아닐것이다.(라고 믿고싶다) 바람에 날렸든, 잊어버렸든 나에게 이런 황홀을 안기는 풍경속에 두고 싶지 않았다. 마땅히 넣을 곳이 없었지만 주워나왔다.


커피 봉지를 주웠더니 그 옆에 사탕봉지가 있고 그 옆엔 나무젓가락과 나무젓가락 포장봉투가 있고 과자나 음료의 절취부분을 떼어낸 조각들이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등산로 주변을 지나면 빠지지 않고 버려져 있는 것이 홍삼포장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견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고 홍삼까지 마셨겠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언제나 자연에게서 취하기만 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아끼는 마음도 없는 우리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새들과 곤충과 나무, 물살이들이 인간을 위한 배경도 아니다. 더구나 여긴 그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고 우리는 잠깐 다녀가는 손님이다.


다른 무엇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적인 무심함과 귀찮음이 곳곳에 떨어져있었다.


내 자리에서 발견한 커피봉지 하나에서 시작해 가는길에 있는 쓰레기는 보이는대로 다 주워 담았다. 작은 조각일수록 더 열심히 집었다.



주운 쓰레기를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손을 씻고 나오는데 예쁜 새소리가 들렸다.

새가 지저귀는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담쟁이 넝쿨이 감싸며 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운 크고 멋진 나무였다. 새 잎을 낸지 오래지 않아 형광연두빛에 가까운 색이 빛을 받아 더 반짝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들의 입장에선 우리가 얼마나 불청객일까 생각했다. 예의를 갖춰 흔적없이 다녀가는 손님이기를…


다음엔 쓰레기를 담아올 봉투를 챙겨가야겠다.

집에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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