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에세이]남의 일이 아닌 보이스피싱




 


전화가 왔다.

화면에 뜬 선명한 발신인 ‘엄마’


“어! 엄마 왜?”

“어, 저기 은행인데요. 어머님이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으셨나봐요. 따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따님 괜찮은거죠? 아무일 없으신거 맞죠?”

“네”

“아, 그럼 어머님이랑 직접 통화해보세요~!”


당황스러웠다. 엄마 전화로 들려오는 웬 남자의 목소리, 보이스피싱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 너 잡혀있다고… 돈 가져오라고.. 흐.. 흑”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은행직원에게 신고(?)해서 경찰도 오고 잘 마무리 됐다고 한다. 볼 일이 일찍끝나 마침 집에 들어오던 참인데 놀란 나는 바로 엄마집에 갔다.


다리가 떨려서 집에는 잘 갔을까 걱정했는데 경찰관님이 집까지 데려다주셔서 무사히 올 수 있었다고한다.


엄마는 평소 보이스피싱 뉴스를 보면 저런거 왜 당하냐며 전화를 끊으면 되지 않냐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전화한통 없이 은행에 가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막은 이랬다.

집전화로 연락이 왔는데 다짜고짜 어떤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엄마~ 나 살려줘, 나 좀 도와줘” 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누군가 해코지하는 소리만 들리고 도와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는 놀라서 ‘00아~!’ 불렀고 그때 상대가 내 이름을 알아챈것같다. 내 목소리가 아닌것 같았는데도 무슨 큰 일이 난 것같아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 앉은 엄마는 그 다음부턴 눈물만 났다고 한다.


상대는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혼을 쏙 빼놔서 내 전화번호도 생각이 안났단다.


은행에 가서 돈을 찾으라는 말에 “이거 보이스 피싱 아니에요?” 라고 물었다면서도 엄마는 왠지모르게 은행으로 향했다. 돈을 찾으려고 볼펜을 집다가 손이 떨려 이름도 못쓰겠어서 주위에 사람을 찾았는데 그날따라 청원경찰이 보이지 않았다.

바쁜 입출금 창구대신 대출 창구로 가서 아무나 붙잡고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은것 같다’ 고 했다는데 그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먹이는 엄마를 진정시키고, 보이스피싱전화를 대신 받아 처리하고, 경찰에 신고한 그 은행직원분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내가 집에가자마자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달려와 나를 안았다. (안았다기 보다 안겼다.)

멀쩡한 내 모습을 본 엄마가 조금씩 진정하더니 아무래도 니가 아닌것 같더라며, 내가 당당하게 보이스피싱이 아니냐고 묻기까지 했다며, 전화를 끊지 말라고 했는데 전화를 끊고 은행직원에게 신고 했다며, 경찰이 잘했다고 괜찮을거라고 안심시켜줬다는 이야기들을 모험담처럼 늘어놓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전화 받은 내내 울었을거면서…


울엄마는 우는걸로 유명하다.

특히 그게 내 일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내가 다치거나 아파도 엄마가 더 울고, 학교다닐때 환경미화 준비하느라 집에 연락하는걸 깜박하고 늦었더니 울면서 학교앞까지 찾아왔다. (겨우 7시 밖에 안됐는데….)

나한테 무슨일이 있을까봐 찾아나서는데 온갖 생각이 다 들며 그렇게 눈물이 나더란다. 그 일로 너희 엄마 왜 운거냐며 나는 학교에서 한동안 유명했었다.


“치~ 그런데 보이스피싱인지 알았다면서 은행에는 왜갔어? 나한테 확인 전화 한통이면 될 걸....”


내가 물었다.


내 목소리도 아닌것 같고, 보증을 선 돈을 못갚았다는 시나리오도 이상하고, 보이스피싱인것 같았는데도 혹시나 나일지 모른다는 1%의 의심 때문에 전화를 끊지는 못하겠더란다. 어떻게든 애를 데리고 나와야한다는 생각밖에 안났다고…

순박한 시골 어르신들이나 당하지 뉴스보면서 왜 당하나 싶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내 자식이 걸리면 얘기가 달라지더라고 했다.


이제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 초짜인것 같다며.. 허술한것이 한 둘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가 계속 우니까 달래기도하고 은행에가서 돈 찾으면 뭐라고 말할지도 물어봤다나?


“아이고.. 나쁜 사람들. 사지 멀쩡하면 일을해서 돈을 벌지. 왜 그런 짓을 하고 살까…?” 라고 엄마말에 대꾸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사지가 멀쩡할까?”

“사지가 멀쩡하면 먹고 살 만큼 돈을 벌 수 있나?”

코로나로 있던 가게도 문을 닫고 실직하는 판인데…

이건 분명 범죄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쁜 짓이지만 범죄를 유도하는지도 모를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얼마 전 알쓸범잡에서 본 내용이 생각났다.

일자리가 있으면 범죄율도 낮아지고 재범률도 줄어든다고 한다. 내가 정당하게 먹고 살 수 있는데도 일확천금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곧 복지이자 안전!’이라는 말이 깊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또 감사했다.

아무일 없이 넘어가서도 감사했고, 내가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어서 감사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거.. 잘못될까봐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조금만 시야를 넓혀 핏줄로 얽힌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내 이웃, 내 동료, 뭇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 더 가져보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티비에서 나오는 일이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번 경험이 함부로 말하지 않고 사회문제에도 관심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잘못될까봐 놀라서 달려온 내 마음을, 내가 잘못됐을까봐 울며 은행으로 달려가던 엄마의 마음을 뭇생명으로까지 확대시키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씀이 조금은 더 이해가 된다.


저는 좀 더 큰 틀에서 인류 가족을 생각해야 한다고 여겨요. 가족을 통해서 인격이 형성되고 영향을 주고받지만 마침내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야만 성숙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죠. 가족의 개념을 좀더 넓혀서 모르는 이웃도 가족으로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이 될 때 마침내, ‘나’ 라는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난 의미가 완성된다고 봅니다. (…) 혈연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연결되어 있는 그 지평까지 마음을 넓혀간다면 우리의 일상은 더욱 평화로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해인 안희경 인터뷰 <이해인의 말> 중에서



덧,

보이스피싱 의심 전화를 받았을때 본인이 직접 대응하기 보다 전화를 끊고 112에 신고하거나(이게 베스트) 울엄마 처럼 은행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합니다. 전담팀도 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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