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에세이]한걸음 물러나 생각하기




 


뜬금없는 문자를 받았다.


요즘 기사를 보니 내가 얘기했던 A국회의원 질이 안좋다는 지인의 문자였다.


그 대화를 한 것도 오래 전이고 내가 A의원 이야기를 꺼낸것도 그 의원이 펼치는 환경정책이 맘에 든다는 말을 했던건데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신문기사 링크와 더불어 그동안 들었던 여러 정치 관련 정보를 모아 A의원이 왜 당선이 됐는지, 지금 하는짓이 어떤지, 관상을 보니 딱 누구 같다느니, 이런류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느니 하며 연타로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잘 아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A의원이 누구 사람이고 그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낙하산으로 꽂혔으며 환경 어쩌고는 그냥하는 헛소리라고 했다.


나는 왜 이런 대화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했지만 그간 A의원의 행보를 보면 환경에 대해 잘 알고 방향도 제대로 잡고 있으며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도 봤기 때문에 그건 아닐거라고 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의원이 환경정책을 펼친다고 지지율이 더 나오는 상황도 아니니 A의원의 진정성을 의심할 어떤 근거가 없었다.


환경관련해선 다른 훌륭한 사람이 많으니 잘 살펴보라길래 그냥 그러겠다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적잖이 언짢은 대화였다.

앞뒤 맥락도 없이 식구들끼리도 안한다는 ‘정치’ 이야기를 불쑥 ….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녁이 되니 낮에 했던 내 말에 뒤늦은 공감을 보내며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낌새를 느꼈는지 요리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이전에 맥주 마시고 있다며 루꼴라 피자 사진을 보낸적이 있었는데 그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피자의 도우도 직접 만들었냐고 물었다.


나는 이케아 마르게리타 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 나는 직접 만들었나 해서 살짝 놀랐는데 ㅋㅋㅋㅋ 그 정도는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ㅋㅋㅋ”

라고 했다.


뭐가 다행일까? ‘그 정도’ 는 뭘 말하는 걸까?


역시 기분좋은 문자는 아니었지만 도우까지 만들어서 피자를 해먹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더구나 안주로 빨리 해먹는건데 이케아 피자가 유기농이고 성분이 좋은 편이라 편의점 인스턴트 사먹는 대신 사다놓고 토핑만 얹어 먹는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내 도우는 좀 달라보여서 놀랐는데 역시 아니었냐고 다행이라고 했다.


역시? 왜 자꾸 다행? ……


ㅎㅎ 뭐가 다행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지 않아서 다른 화제로 돌렸다가 급하게 마무리했다.


평소의 나 같으면 매우 화가나서 길길이 뛰었을 것이다. 뜬금없는 소리를 갑작스럽게해서 낮에도 뜨악하게 하더니 저녁엔 또 뭔소리인가? 괜히 대거리를 해줬다며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상대가 말한 단어 하나 조사 하나에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의미를 부여해 자기를 괴롭히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굳이 그 단어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것이 아니냐며 상황을 머릿속에서 재연하고, “말실수란 진실된 무의식의 표출” 이라는 프로이트의 말까지 빌려 결론도 안나는 방식으로 스스로 더 화나도록 기름을 들이 붓는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못난 생각을 하며 상대를 미워하고 확대해석하고 섭섭해 하는데 금쪽같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는다.


그런데 이번엔 화가나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첫 문장을 보는 순간부터 느꼈다. 아~ 내가 낮에 의견에 동조하지 않아서 화가 났구나? 그래서 나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표하고 싶은거구나?


내 기분을 상하게 하고 빈정거리고 싶구나?

하고 한걸음 떨어져 생각하게 되었다.


그 상황에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기분좋은 대화는 아니었어도 화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 물어볼까? 싸울까? 하는 생각도, 이 사람은 더 이상 상종을 못하겠느니 어쩌느니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아~ 이 사람은 화가나면 빈정거리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버릇이 있구나’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A의원에 대한 기사를 보내면 내가 같이 길길이 뛰며 욕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서운했을 수도 있겠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때 예상과 너무 다른 반응이 돌아오면 서운했던 적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평소 나답지 않게 갑자기 무슨 득도한 사람 코스프레인가 싶을 정도로 생각이 평화로운(?) 방향으로 흘렀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인간이고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성숙해지는것은 아니다. 내 진짜 모습도 내가 생각하는것과 다르게 무례하고 권위적이며 약삭빠르고 인색하고 변덕스럽고 잔인하며 어리석을 수 있다.


불완전한 상대의 모습에서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상황을 이해하자는 맘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화가나지도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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