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에세이]과천시향 연주회에서 느낀 로컬의 미래




 


과천시향 연주회에 다녀왔다.


과천에 살면서 제일 좋은거 3가지를 뽑으라면 그 중 하나가 바로 과천시립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 후 8년동안 신년음악회, 계절마다 열리는 기획음악회, 과천축제에서 하는 공연 등 과천시향의 연주를 거의 빠지지 않고 다녔다.


여러번 가다보니 지휘자도 연주자들도 익숙해졌다. 연주하는 모습만 봐도 성격을 알것같다.

매우 범생스럽게 지휘자와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연주하는 키 큰 비올라연주자, 늘 머리를 곱게 묶고 안경을 쓰고 나오는 바이올린 연주자, 연주하다보면 점점 더 얼굴이 빨개져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는 클라리넷 연주자, 매우 섬세하게 고운 음색을 내는 빼빼마른 오보에 연주자, 왔다갔다하며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신기한 타악기 연주자, 열정적으로 연주하다보면 자세가 좀 이상해지는 콘서트마스터, 겉모습 만큼이나 지휘하는 방식이 다른것 같은 빼빼 부지휘자와 미소가 아름다운 넉넉한 지휘자.


가격도 만원 내외라 부담없이 걸어가서 즐길 수 있고 티켓팅 싸움도 없으며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같은 세계적인 음악의 나라에선 밖에서도 연주회가 많이 열린다. 자기가 좋아하는 지역 오케에 평생회원으로 가입하여 일생을 함께하기도 한다.


한 때 나는 비행기가 없던 시절의 옛날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적이 있다. 해외여행도 못가보고 평생 살던 동네에서 살다 죽었을 것이 아니냐고 정말 안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얼마나 오만하고 무식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아 가고있다.

세계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새롭고 색다른 것들을 잠깐씩 경험하는 것이 한 지역에서 오래동안 머물며 일생의 변화를 함께하는것보다 중하고 멋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즐거운 불편에서는 “지금의 사회가 규범으로 삼고 있는 것은,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적 생활(american way of life) 을 실현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믿는 가치관”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희망의 ‘미래’ 라고 말했던 로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Anyway,

이번 공연은 너무 좋아서 꼭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내 눈 앞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연주되는걸… 그걸 라이브로 듣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 좋고 흥분이 돼서 연주를 듣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40분이 넘는 곡을 이렇게 집중력있게 숨 죽이고 지켜본적이 없는것 같다. 중간중간 기침소리나 핸드폰 떨어뜨리는 소리(아~ 제발 좀… ㅠㅠ)가 너무 짜증이 날만큼 고이 모아서 간직하고 싶은 소리였다.


조성진 콘서트에서 우는 관객을 (화면으로)본 적이 있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마지막 빰빠라밤! 하며 곡이 끝날때 정말 눈물이 날것 같았다.


“브라비~!”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었지만 나에게 이목이 집중되는게 무서운 나는 그러지 못하고 물개 박수만 크게 쳤다. (앞에 어떤 중년 여성분이 기립박수를 쳤는데 너무 멋져보였다. 나도 담엔 눈치보지 말고 내 감상대로 하고 싶은데 가능하려나? ㅠㅠ)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를 들었다는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연주되었다. 이 곡은 조성진이 고등학교때 연주했다는 영상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다. 원곡은 피아노 곡이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라벨이 편곡한 오케스트라곡이 연주되었다.


무소르크스키는 사랑하는 친구 하르트만이 3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듬해 친구들이 하르트만의 그림을 모아 전시를 열었고 그 전시를 보고 작곡해 친구에게 헌정한 곡이라고 한다.


제목처럼 ‘전람회의 그림’ 10점을 음악으로 묘사한 것이었는데 각 곡마다 특색있고 재미있었다.

음악가는 그림을 음악으로도 묘사할 수 있구나…

칸딘스키는 공감각이 발달해서 음악을 들으면 색채가 보였다던데 혹시 무소르그스키는 그림을 보니 음악이 떠올랐을까? 신기해하며 감상했다.


조성진 연주를 들을때 귀에 익은 멜로디 부분이 중간중간 나와서 이 곡의 메인 테마인가 했더니

그 멜로디는 ‘프롬나드(산책)’ 로 그림과 그림 사이를 움직이는 것을 표현했다는 설명에 또 감탄했다. 그림을 보다가 다음그림으로 이동하는것까지 음악으로 표현하다니…


특이하게 이 곡은 타악기가 많이 등장했다.

생전 처음보는 이름모를 타악기도 종도 등장했다. 또 하프와 첼레스타도 등장하고 곡의 곳곳에 돋보이는 관악기의 연주도 좋았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소리에 흠뻑 빠져들었다.


너무너무 좋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을 라이브로 들은것도, 처음 들어보는 라벨편곡의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들은것도 좋았다. 이런 훌륭한 공연을 1만원 주고봐서 미안할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낸 세금이 아깝지 않았다.


김구 선생은 늘 ‘높은 문화의 힘’ 을 가진 나라를 꿈꾼다고 하셨다. 세금으로 만날 건물짓고 보도블록 교체하지 말고 이런 좋은 문화공연 기획하고 좋은 연주자, 공연가 양성하고 투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도 수행평가로 공연보고 감상문 쓰게하지 말고 그냥 그 자체로 즐기는 법을 배우게 하면 좋겠다.


적고보니 의식의 흐름대로 쓴 아무말 대잔치 같아 졌지만 그 때의 기분과 감상이 다시 느껴져 기록하길 잘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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