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에세이]그때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들




 

나는 연애할 때보다 결혼하고 나서가 훨씬 좋다.


보통은 시간이 갈수록 처음 만났을때의 설렘이 사라지고 서로가 편해지면서 뜨거웠던 사랑이 식어 정으로 산다던데 나는 그 말에 전혀 공감이 안간다.


서로 양보없이 날것으로 가득찼던 애송이 시절의 그 경험을 다시 하고싶지 않다. 우리사이 불타는 사랑도 존재했던 기억이 없다. 그런감정이 없었다고 사랑하지 않는것도 아니다.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안에 존재한다.


토요일, 망원동 카페 창비에 다녀왔다.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망원동은 일부러 가야하는 곳이라 쉽지 않았다.


책으로 가득한 세련된 공간, 도서관 같기도 서점같기도 카페 같기도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간 시간엔 사람이 별로 없어 말을하면 공간 전체에 울릴 정도로 조용했다. 긴장한 곰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곰은 처음가는 곳, 처음하는 것, 낯선일에 예민하다. 그곳만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익숙해지는데 오래걸리는 사람이다. 낯선곳에서 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당황해하고 얼어붙는다.


그런 상태에선 실수가 잦을수밖에 없다.

본인이 생각할 때 창피하고 불편한 경험이 생겨서인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선 인상을 팍 쓰고 본인이 먼저 화를 낼 준비를 한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결혼 전엔 몰랐다.


연애할땐 늘 새로운 곳에서 뭔가 재미진걸 하고싶기 마련이다. 그래서 매주 새로운 데이트 코스를 다녔는데 정말 거짓말 안보태고 싸우지 않은적이 단 한번도 없다. 처음가는 여행지에서는 거의 5분에 한번씩은 싸운다. 나는 곰의 그런태도를 이해하지 못했고 왜 그러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저 ‘왜저러나?’ 싶었다.


그런상황에서 울곰은 질문을 하면 아무말이나 대답한다. 잘모르면서 절대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세상의 모든것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데도 예를들어

“ 여기서 몇번 출구로 나가야 돼? “ 라고 물으면

“ 어, 8번출구 “ 라고 말한다.

8번출구로 나가면 목적지가 있을리가 없다. 아무말이나 한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태도가 너무너무 이해가 안갔다. 아까 모른다고 했으면 같이 찾아봤을텐데 아무대답이나 해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것이 화가났다. 상식이나 지식을 묻는 질문이 아닌데도 왜 아무말이나 대답을 하는건지 .. 그문제로 싸운것만 족히 100번은 넘을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시아버지는 선생님이었는데 그 시절 그 지방에서 모른다는걸 인정하는 선생님이 얼마나 됐을까? 몰라도 아는척 아무말이나 내뱉고 얼버무리는게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모르는걸 모른다고 하는게 훨씬 용기있고 멋진 일이지만 그걸 인정하는 시대가 아니었을테지.


울곰은 그 태도를 그대로 보고 답습한 것이다.

나중에 망신을 당할지라도 우선은 무조건 아무말이나 해서라도 아는척 상황을 넘기는게 습관이 된 사람이다.


어제 오랜만에 대중교통으로 처음가는 곳엘 갔더니 곰의 그런 습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애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


그런데 내 태도가 달라졌다.

이 사람은 처음하는것 처음오는 곳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이 아니고 눈치를 보며 긴장하고 어색해 하는 사람이라는걸 인정했다. 알아서 잘하길 바라지 않았다. 나까지 더 긴장하게 만들지 않고(연애할땐 옆에서 막 짜증내고 구박해서 더 못하게 만들었다. 아니 얼마전 까지도..) 내가 나서서 물어보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곰이 싫어할것 같은건 내가 해주었다. 길도 내가 찾고 안내도 주문도 결정도 다 내가했다.

몇번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맛있는 음료도 먹고, 책도 사서 읽고, 한참 둘러보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연애시절 싸웠던 수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그때 조금 더 저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고 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그냥 그런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다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곰을 더 이해하고 받아들인건 결혼 후 시가식구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책읽는것도 안좋아하고 카페에서 (컴퓨터 없이)앉아있는것도 안좋아하는 울곰이 서점이나 카페나 음악회나 전시회에 다니는 이유는 나 때문이다.

“네가 좋아하잖아.”

내가 좋아하니 자기도 좋아졌는지는 몰라도 내가 하는걸 같이 하는게 좋단다. 생각지못한 심쿵 포인트.


뭐 하나하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고민하고 스스로를 들들볶는 나에 반해 곰은 생각도 생활도 심플하다. 내가 곰에게 바라는 디테일한 수백가지 일들에 비교하기도 무색하게 나에게 바라는 것도 심플하다.

우리는 너무 달라서 잘 맞는지도 모른다.


지금 깨달은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린 좀 덜 싸우고 더 즐기고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때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더 알게되어 지금 덜 부딪히게 된걸까?


나에 대해서도 그에 대해서도 더 잘 알고 인정하고 방법을 찾았다면 에너지만 소모하는 무의미한 싸움은 덜 했을걸 …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제의 외출은

깨달음을 얻은 좋은 나들이었다.


그때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 …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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