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에 이르게 따뜻했다가 5월에도 다시 추워지는 바람에 게을러서 아직 이불을 바꾸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불을 빨아널었다.
세탁기에 넣어 세탁한 뒤 꺼내서 널어주었다.
건조대에 널 때 조금 힘들긴 했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널린 이불을 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어릴때 우리집은 마당이 있는 단층집이었다.
볕이 좋은날, 마당에 커다란 벽돌색 고무다라이를 꺼내놓고 이불을 넣고 수퍼타이를 풀었다. 다리를 둥둥 걷고 발로 밟던 모습. 거긴 젊은 엄마도 아빠도 함께였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보여 나도 같이 하고 싶었다. 통도 좁은데 비집고 들어가 같이 밟았다. 차갑고 부들부들하며 미끄러웠다. 두더지 게임처럼 이불은 한쪽을 밟으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왔다. 공기를 잔뜩 머금고 높이 솟는 부분도 있었다. 미끄러질까봐 엄마는 내 손을 잡아 주었고 몇번 밟고 나와서는 젖은 발로 마당에 발자국을 찍고 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밟은 빨래를 몇번이나 헹군 뒤 물을 잔뜩 먹어 무거워진 빨래의 양쪽끝을 엄마랑 아빠가 하나씩 잡았다. 꽈배기처럼 비비꼬아 물기를 짜서 주황색 빨래줄에 널던 장면.
알록달록 오방색 벌집무늬가 있는 비단느낌(반짝이는 천인데 물빨래를 했으니 분명 비단은 아니다)이불이 마당 한 가운데 걸린 모습이 어린 눈에도 참 좋았다.
그런 좋은 기억은 아마도 내가 그 노동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몇번 밟는 시늉이나 하다가 널려있는 빨래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예쁘게 보였을지 모른다.
오랜만에 맑은 5월하늘 |
지금 당장 너른 마당이 있고 빨래줄이 걸려있고 날씨까지 좋다고 해도 나에게 어떤 방법으로 이불세탁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이불을 싸들고 빨래방에 가서 건조까지 완료된 세탁물을 가져오는 편리를 선택할것 같다. 아니 매번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빨래방쪽을 더 많이 선택할 것 같다.
그런데 뭔가를 잃은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세탁기를 돌려 혼자 이불 하나쯤은 가볍게 빨아널고 마시는 지금의 커피 한잔과, 날 좋은날 온가족이 동원되어 겨우 이불 하나를 빨아 널고 서로를 보며 마셨던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의 맛은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계절에 따라 바뀌는 바람을 느끼며 햇볕냄새 가득한 뽀송한 빨래를 걷는 기쁨은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삶에 책임지며 산다는것은 무엇일까?’
생각 해본다.
(간만에 맑았던 오늘 낮의 풍경. 그리고 비바람이 엄청난 현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요즘 날씨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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