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책도 읽히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으로 ‘그때 이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때 이 행동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덧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내 감정과 비약에 그렇게 스스로 매몰되어 가고 있을때 이 책을 만났다. 사다놓은 책들이 하나같이 사회문제 환경문제를 다룬 것들이라 손도 안가던 때에 신기하게도 이 책은 읽혔다.
“ 지금 안 필요한 책은 못 읽어요 “
은유작가가 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수신’ 이 왜 제일 먼저이며 중요한 일인지 알것 같았다. 내가 온전하지 못하면 다른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회문제고 나발이고 안중에도 없어진다. 현대사회는 그런 의미에서 사회문제가 많고 해결도 어려운게 아닐까 생각했다. 온전히 자신을 지키고 살기가 어렵고 그 사람이 또 다시 타인에게 날을 세우기 때문이다.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들이 모여 서로에게 상처받고 주길 반복한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주제로한 글인데다 매일의 작은 일상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 그런지 편안히 읽혔다.
저자의 전공을 살려 일상의 사건을 심리학 개념으로 녹인 설명도 좋았다.
‘아~ 내가 지금 가지는 이 감정은 이것 때문이겠다.’ ‘그래 그럴 필요가 없지!’ 공감하며 나와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었다.
한걸음 물러나면 보인다.
알면서도 쉽지 않은 그 한 발을 떼는일에 힘을 실어 준 책이다.
역시 답은 책인가?^^
38p.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69p. 열등감을 남보다 부족하다는 절망이 아닌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승화시킬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게 된다.
110p. 삶은 수많은 변수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을 변칙이 아닌 지극히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풀어내는 것이 살아가는 과정임을 깨우친 것은 나이 들어가며 얻은 큰 수확이다.
118p.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자신이 소유한 것에 안주하기보다 아집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데서 만족을 느낀다. 이들은 비워낸 공간에 다른 사람과 섞여 소통하고, 사랑하고, 나누며, 베푸는데서 오는 행복을 채워 넣는다. 삶을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으니 잃어버릴 것도 없다. 잃어버릴 것이 없으니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나의 중심은 나 자신의 내부에 있고, 고유의 힘을 바탕으로 나의 꿈과 당당하게 정면으로 마주한다.
124p.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만큼 남기면서 생겨난 물리적•정신적 공간에 만족하고, 주어진 매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니 내 발목을 잡고 있던 소유적 인간에서 멀어졌다.
161p. 현재는 과거나 미래, 그 어디에도 지배당하거나 잠식당하지 않는다. 과거는 현재모습의 실마이로서 냉정히 성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충만하게 살아가야 하는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165p. 우리는 먹는 내내 “아 너무 맛있다”를 연방했다. 소박하게 차려낸 밥상이었지만 오전 내내 가슴 설레며 세웠던 계획도, 모든 것이 무산된 절망스러운 상황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먹는 순간을 완벽히 만끽한 것이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행복이 가장 현실적이며 직접적 경험으로서의 ‘실존적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77p. 쇼펜하우어는 삶에서 찾아오는 권태를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신적 풍족이 제일 중요하다 이야기한다. 외부가 아닌 자신 속에서 스스로 쾌락의 샘을 많이 찾아낼수록 인간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나이 들수록 필연적으로 고갈될 수밖에 없는 외적 요소보다 내적으로 지닌 소유물을 통한 즐거움을 스스로 창조하며 즐기는 것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비결이라 말한다.
181p. 어쩌다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감이 찾아오면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과 일상의 시간이 사고 없이 찬찬히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하자. 그리고 그 일상 속에 깃든 빛, 삶을 충만케 하는 조용한 에너지를 느끼며 나를 위한 정말 단순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려 기쁜 마음으로 외쳐야겠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208p. 바베트의 만찬은 우리 모두에게도 저마다 주어진 삶이라는 만찬이 펼쳐져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만찬은 바베트의 요리와는 다르다. 맛있는 음식 사이에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밍밍한 음식도 있고, 너무 질겨서 씹기 힘든 음식도 있을 것이다. 그럴때면 양념을 더해 감칠맛을 더하고, 오랜 시간 푹 끓여 부드럽고 풍성한 맛을 끌어올리듯 우리의 일상에도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더해 멋진 삶이라는 만찬으로 승화시키면 된다. 그것이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기 위한 우리의 몫이 아닐까.
220p. 인간에게 완전히 기능한다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완벽한 수준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빈 공간을 조금씩 채우는 삶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이는 지혜와 혜안이 우리를 자기실현라는 곳으로 데려다 줄 것 같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