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살았나? 잘 살고 있나?’
에 대한 고민과 반성과 후회가 반복되는 요즘,
그동안 내가 한 일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헛짓이 아니라는걸 하루에 몰아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침엔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DM을 받았다.
#친환경여행법 캠페인에 선정되었으니 개인정보 활용동의서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걸 한 적이 없는데 뭔 소리인가 싶었다.
알고보니 지난 6월 말 곰의 생일여행 때 친환경여행에 필요한 물품과 여행법을 sns에 올린것이 당첨된 모양이었다. 기뻤다 ㅎㅎ
DM으로 답신을 보내고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 이번엔 한살림 공식채널에 내 차요테 김밥이 소개된 것을 보았다.
작년 이맘때 <조합원이 소개하는 채식밥상>에 올렸던 요리인데…. 또 기뻤다.
한살림 지부에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더니 활동가님이 반갑게 맞으며 소식지를 내게 안겨주셨다. 내가 쓴 글과 사진이 실린 소식지가 방금 나왔다는 것이다. ㅎㅎ 너무 잘나왔다며 본인일처럼 좋아해주셨다.
신기하고 또 기뻤다.
코로나 이후 바뀐 생활때문에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어딘가 정기적으로 출근하지 않는다는 거, 일정한 내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게 불안하고 ‘내가 뭘 하는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그럼 뭘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면서 깊은 고민속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의도치 않게 한꺼번에 툭툭 터지는 일들을 보며 ‘그래도 그동안 허송세월 한 건 아닌가 보다.’ ‘방향은 맞게 가고 있는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며 위안이 되었다.
내가 하고싶은 일이 있고 가고 싶은 방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러다가도 자꾸 뒤돌아보고 딴 길에 미련을 두는 나도 불쑥불쑥 나타난다.
‘ 가랑비에 옷 젖는다.’
‘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른다.’
라는 속담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작은것이라고 무시하다가 반복되고 쌓이면 큰 패착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살아야겠다’ 고 생각했다. 대단한 걸 한적도 없고, 그럴 깜냥도 안되는 사람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그 세계에 빠져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흠뻑 물들어 있고 싶다.
결국 문제는 내 ‘마음가짐’ 이었나보다.
마음 한켠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는 느낌이다.
여러 핑계들에서 빠져나와 하루하루 매일의 일상에서 황소걸음을 걸어야겠다.
소식지의 글은 편집부에서 원하는 분량을 살짝 넘겼더니 지면상의 이유로 글이 좀 짤렸다. ㅠㅠ
편집되기 이전의 글 전문을 올려본다.
사시사철 못 구하는 것이 없다.
한겨울에도 오이무침을 하고 한여름에도 쪽파김치를 담근다. 언제든 구할 수 있으니 어느 작물이 제철인지도 잘 모른다.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열대과일조차 못 구하는 것이 없다. 이제껏 본 적 없는 편리를 누리고 있지만 그만큼 계절을 충분히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작물은 이전의 과채에 비해 향도 영양도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기술이 빨리 키우고 크게 키울 수는 있어도 내실 있게 키우는 건 오직 자연의 시간뿐이다.
먹거리 문제는 ‘기후위기’와도 뗄 수 없는 관계다.
제철이 아닌 작물을 키우기 위해 들이는 에너지와 먼 거리에서 이동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 문제가 심각하다.
한살림을 이용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제철 우리 음식을 먹게 되었다. 가온재배를 하지 않으니 제철이 아닌 건 구할 수도 없다. 얼마 전 한살림의 #우리제철채소알리기 활동으로 지부에서 받은 삼잎국화나물은 생전 처음 보는 채소였다. 잎의 모양이 삼잎처럼 생긴 국화과의 식물이란다. 쓴맛도 없고 맛이 순해서 생채로 먹어도 괜찮았다. 잎의 모양을 살려 쌈밥을 만들었더니 모양도 예쁘고 향도 좋았다. 또, 두메부추는 일반부추에 비해 잎이 통통하고 자르면 끈끈한 액체가 나와 신기했다. 향도 맛도 진하고, 통통한 잎 덕분에 익혀도 식감이 좋았다. 우연히 ‘야생화 자연학습장’에서 두메부추를 발견했을 때 반가웠다. ‘야생화 자연학습장에 있을 정도의 토종 작물을 먹는다니…’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땅의 힘을 지키는 친환경 농법으로, 우리 땅에서 자란 토종 작물을 먹는다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과거에 비해 소비하는 작물의 종류가 1/3도 안 된다는 시대에 ‘먹어서 지키는’ 상생의 한 끝에 힘을 보탤 수 있어 기쁘다.
여름 된장찌개엔 애호박을 겨울 된장찌개엔 무를 넣어 끓이며 계절을 느낀다. 몰랐던 우리 작물을 접하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먹음으로 식탁의 풍요를 누린다.
원할 때 무엇이든 쉽게 구할 수 있는 편리를 추구하기보단 계절의 흐름과 제철 먹거리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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