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돋우다]종교와 역사의 이름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압에 대하여… 넷플릭스 시리즈 - 그리고 베를린에서




 



사회적으로 여성이 권리를 가지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건 지식으로 알고있는 여성지위고 나 개인적으로는 여성이라서 겪는 지위의 차를 크게 느낀적이 없다


우리집은 여성파워가 센 집안인데다(큰엄마가 시집와서 집안을 일으킨 케이스, 시집살이는 커녕 아무도 대항하지 못함)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도 지내지 않았고 명절에 여자만 일하는 경우도 없었다. 음력설이 아닌 양력설을 쇠고 고모들까지 모두 모여 명절음식을 만드는 대신 고기구워먹고 게임하며 보냈다. 손이 귀해서 여자건 남자건 환영받는 분위기였고 나는 그 중에도 거의 막내에 가까워 나이차이가 많은 사촌들 사이에서 귀염받으며 자랐다.


오빠만 사주고(또는 남동생만) 여자라고 안해줬다거나 하는 일은 내가 외동이기 때문에 불가능 했던 차별이었지만 친척들이 모였을때도 할머니가 손자만 좋아한다거나 아들이라 편애하는 일도 없었다. 여럿이 둘러 앉을때, 밥먹을때. 여자상 따로 남자상 따로 앉은적도 없다.

‘어디 여자가~’ 따위의 소리는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결혼 후에, 사회에서나 집안에서 여자가 갖는 약자의 위치나 차별에 대해 자주 느낀다.


82년 김지영을 읽을때 (그리고 영화를 봤을때) 남들 다 엄청 공감하고 눈물짓는 포인트에서 나는 공감이 안갔다. 내가 분노하고 공감한 부분은 지영이를 집에 안보내고 일시키는 명절장면이나 똑같이 어렵게 공부했는데 그리고 능력도 있는데 육아하느라 경력단절이 된 지영에게서였다.


화가났다. 너무 화가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에게만 지워지는 온갖 의무와 역할들에 화가나고 그 부당함을 견딜수가 없었다.


그럴때 이 작품을 만났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는 뉴욕에서 생활하는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 이디시에서 탈출한 여성의 이야기다. 뉴욕에서 이런일이 벌어지고 현재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공동체의 여성들은 억압당한다. 여성에대한 억압에 종교적 당위성까지 부여되면 얼마나 잔인한 인권 탄압이 될 수 있는지를 이 작품을 보며 느꼈다.


유대교 근본주의 공동체에서 여자는 홀로코스트로 잃어버린 유대인 인구를 회복하는 베이비머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를 많이 낳고 기르는 것이며 자기 마음대로 책 한권을 읽을수도, 유투브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 여자를 교육 시키지 않음으로써 혹시나 공동체를 벗어나더라도 살 수 없도록 대비까지 한다.




여성들은 대대로 그런 대우를 받고 자랐으며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에서 살았기 때문에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산다. 또 다른 여성에게 같은 삶을 강요하면서… .


에스티의 남편은 부부사이의 일을 모두 자기 엄마에게 보고하고 모든걸 에스티의 탓으로 돌리는 찌질이인데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그들의 부부관계까지 왈가왈부 하는 장면을 보고는 정말 기가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생활은 커녕 인권도 없는삶이구나 싶었다.


그런 에스티가 어느 날 제대로 짐도 챙기지 못한채로 폭압의 공동체에서 벗어난다.




God expected too much of me

Now I need to find my own path.

(하나님이 내게 너무 많은걸 원해서, 나만의 길을 찾아야 했어)

여성을 억압하는게 자연스러운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벗어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다행히 에스티에겐 엄마가 준 출생서류와 할머니가 눈감아 준 피아노레슨, 그리고 탈출을 도와준 피아노 선생님이 있었다.



특별입학으로 음악 학교에 들어가기엔 터무니없는 실력의 에스티에게 독하지만 솔직한 감상평을 해준 친구도 여성이다. 그의 쓴소리가 없었다면 메조소프라노의 멋진 음색을 가진 주인공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라는 말은 분명 가부장적인 어떤 남자가 만들어 낸 것임이 틀림없다. 여자들을 서로 질투나 하며 남자의 사랑을 구걸하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을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경우에 여성은 연대하고 도우며 서로를 지켜왔다.


본인은 라디오를 듣는것도 숨어서 듣고 노래를 부를 때도 집에 남자들이 없을때만 그것도 눈치를 보며 부르지만 손녀는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해 준 할머니, 어른들에게 세뇌 당한대로 자신을 비난하는 딸에게 독일여권과 서류를 남기고 떠난 엄마, 후세대의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도록 작은것이라도 여지를 남긴 선배세대의 여성이 있었기에 에스티처럼 자신을 억압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는 용기있는 여성이 나올수 있었다고 믿는다.


여자를 돕는 것은 여자다.


이 영화가 실화라는 것이 가장 놀라운 사실이다.

실제인물이 쓴, 영화의 원작은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이다.



영화는 결론이 없이 끝나기 때문에 실제 인물은 아이를 낳았는지, 그래서 혼자 키우는지, 학교엔 들어갔는지, 뭘하며 어디서 사는지 등 궁금한 것이 많지만 한편으론 읽다가 너무 화가 날것 같아서 망설여지기도 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말도 안되는 성경해석을 증거로 억압하는 모습엔 정말 치가떨렸다. 그런게 ‘orthodox 정통’ 이라면 정통같은건 다 갖다 버려야 마땅하다.

E-book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긴 했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열받는 책을 요즘 너무 많이 읽었다.


그래도 이 작품은 강추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에스티에게 강력하고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다. 아직 숨죽이고 부당하게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 어떤식으로든 꼭 탈출해 자유롭게 자기만의 삶을 살 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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