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집에 오는데 찬바람이 너무 불었다. 코트입고 나갔다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뜨끈한거 먹을겸 다먹은 김치통도 비울겸 김치국물 넣고 콩나물 넣고 떡이랑 찬밥도 넣어 갱시기죽 끓였다. 김치가 비건이 아니라서 엄연히 따지면 비건은 아니지만 따뜻하고 간단하게 맛있게 먹었다.
김치국물까지 남음제로!!!
페스코와 비건이 섞인 실천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비건채식은 실패했지만 주변의 배려를 엄청받았다.
점심 김밥 주문때 내 메뉴를 따로 주문받았고(마요네즈가 들어있었지만)생각지도 않은 비거뉴어리 실천동지를 만났다.(만나서 찌찌뽕함ㅋㅋ)혼자가 하면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될 수 있지만 이렇게 하나 더 만나면 어느새 흐름이 생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야 하는 이유다.
밥먹고 별구경하러 나갔다. 안타깝게도 미세먼지와 구름으로 쏟아질것 같은 별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정애언니의 학다리 별사건도 들으며 동네 사람들 다 깨울정도로 빵빵 터졌다.
분위기도 이 사람들도 참 좋고 행복했다.
“ 내가 너를 위해 비건 쌀국수를 챙겨왔어! ” 라고 정애언니가 말했는데 쌀국수에 너무 크게 고기그림이 그려져있었다.ㅋㅋㅋ 이거 고기 사진이 이렇게나 큰데 비건인거 맞냐고 빵 터져서 얘기했더니 거기 무슨 고기가 들어있겠냐며 언니가 더 큰소리를 쳤다. 성분표를 보니 당연히 비건은 아니지만 인공 소고기 향 빼곤 특별한 것이 없길래 모두 엄청 웃으며 맛있게 먹었다.ㅋㅋ채식에 대해 농담섞인 논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그 자체가 참 감사하다. 쌀국수에 레몬이랑 양파절임 & 숙주와 고수를 왕창 올려서 아주 향기롭게(?) 아침을 시작했다.ㅎㅎㅎ
비건챌린지 하는 동안 같이 카페에 가면 빵을 거의 안(못)먹었다. 당연히 생각도 안하고 있던 찰나 베이글은 우유 계란 버터 다 안들어 간다고 위에 붙어있는 치즈떼고 먹으라며 언니들이 빵을 챙겨줬다. 감자가 들어있는 베이글과 커피를 냠냠.
집에 돌아와서 저녁으로 그릴하다가 덜익은 감자와 고구마를 오븐에 구워 김치랑 먹었다.
같이 있으면 넘넘 즐겁고 합도 잘맞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함께 챌린지 하는것 같고 게임같기도 하고 재미있다.
와인바에서 한참을 또 얘기하다 상은언니가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 음성초 고춧가루를 줬다. 언니의 첫 고추농사 수확물❤️ 너무 귀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언니, 정치가 바로서야한다고 그 멀리에서도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는 언니, 고추를 따면서 ‘너무 예쁘지 않냐’고 하는 언니, 선하고 순한사람. 그 기운이 고추에도 분명 담겨있을 것이다. 귀하고 감사히 먹어야겠다.
요즘 여러모로 실망하는 일들이 많은데 내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엔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저녁엔 또 순두부 찌개 끓이고, 버섯볶고, 배추전 부쳐서 맛있게 먹었다. 배추가 달아서 전을 부쳐도 맛있다. 곰도 아주 잘먹었다.
속도 편하고 장도편한 채소집밥.
밥먹은것밖에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또 너무 졸렸다. 졸리고 몸도 무겁고… ㅠ 낮잠을 또 자고 일어났더니 더욱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곰한테 저녁식사를 부탁했다. 남은 밥이 있고, 한살림 초밥유부도 있어서 곰이 차려준 식사. 김치떡라면 끓이고 초밥도 꽤 예쁘게 담았다 ㅎㅎㅎ 점점 업그레이드 중인 내 남자. 겉절이는 내가 했지만 그릇도 곰이 선택한건데 맘에든다.
고마워~ 잘먹었어. 곰.
부침개를 촥 뒤집었는대 전체적으로 누룽지처럼 노릇노릇~!! 이 맛에 스텐팬 쓴다. 유해물질없고 물려줄 정도로 오래사용하면서 아주 바삭하게 부쳐지는 스텐팬. 9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맛있게 잘 먹었다. 좀 살만해 진 듯.. 엄마집에가서 얻어먹을 수 있겠다.
비건리셋을 하는 동안 군것질을 훨~ 씬 안했다. 먹을 수 있는 빵이 별로 없어서 커피에 필수인듯했던 케이크나 빵을 안먹었고, 밥을 먹은 뒤에도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것이 땡기지 않았다.
일부러 멀리하지 않았는데 생각나지 않아서 신기했다.
이번주에도 집에서 챙겨먹을 수 있는 끼니가 몇끼 되지 않아서 밖에서 사먹는 끼니가 많았다. 따라서 좋은재료로 잘 만든 밥은 많이 먹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배려받으며 채식할 수 있는 문화에 노출되어 있으니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아도 큰 어려움 없이 비건지향을 할 수 있었다. 다 같이 내가 먹을 수 있는걸 찾아줘서 게임하는 것처럼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내 비건인친들의 회사에서의 비건밥상 ㅠㅠ
뭐든 해보면 안다.
경험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채식선택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더 많이 관심가지고 공감하고 지지할 것이다.
이렇게(공장식 축산으로) 자란 동물을 먹고 인간이 건강할리 만무하다.
언니들이 년세를 내고 얻은 집에 놀러갔던 날.
신나게 논 다음날에 마을 대표님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지역이 축사가 있는 지역이라 여름에 냄새 때문에 창문 열어놓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돼지축사는 냄새가 더 심하다며 왜 물어보지도 않고 집을 얻었냐고 놀리듯이 얘기하셨다. 여름이나 비오는 날 말고 겨울에만 놀러오라고 하셨다.
우리야 년세로 얻은 세컨하우스지만 누군가에겐 거기가 집이자 삶의 터전이다. 담배 냄새 때문에도 이웃간 문제가 심각한데 내 집이 문도 열기 힘들도록 분뇨 냄새가 심한곳에 있다면 어떨까?
도시 사람들의 더 많은 고기를 위해 우리 이웃은 냄새나 오염의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것 역시 정의롭지 못하다.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에서 냄새에 항의하던 마을사람 대부분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냄새에 대한 항의 때문에 개보다 몇배나 후각이 좋다는 돼지들은 창문도 없는 컴컴한 공간에서 평생을 악취와 오물, 항생제, 스트레스로 가득한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그렇게 스트레스와 항생제가 가득 쌓인 동물의 살을 먹는 우리, 정말 불쌍한건 죽은 동물보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방식은 분명 잘못되었다.
환경을 위해서도 지구와 인간과 뭇생명의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의 이웃과 동물권을 위해서도 우리는 고기를 유의미하게 덜 먹어야 한다.
하루한끼 채식,
일주일 하루 채식,
주말 채식,
주중 채식 등 할 수있는 뭐라도 해보자.
중요한 건 완벽한 실천이 아니라 우리가 내 딛은 서툰 한발짝이다.
출처: 한국 고기없는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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