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복숭아를 수확하기 위해서이다.
작년에 달랑 한그루 복숭아 농부에서 올핸 두 그루 복숭아 농부가 되었다. (백도1, 황도1)
내 복숭아는 너무 무거워 가지가 휘어지고 부러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알이 굵은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렸기 때문이다. 이 복숭아엔 사연이 있다.
올 봄, 복숭아 꽃이 예쁘게 피어있을때 복숭아 나무 전지작업을 하러갔다. 나무마다 한포대씩 비료도 뿌려주고, 복숭아 꽃봉우리도 처음 보았다. 때마침 밭에 밭주인이자 두술도가 대표님 재희언니가 계셔서 1:1지도도 받으며 생애 첫 가지치기를 했다.
복숭아 전지가 목적이었지만 때가 딱 맞은 덕분에 하루 자면서 벚꽃구경까지하고 레일바이크도 타고 즐거운 꽃놀이 하며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 후 상은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내 나무는 전지를 한것이 맞냐는 것이다. ㅋㅋㅋㅋㅋ 비교군까지 찍어주며 어디가 전지가 된거냐며~ ㅋㅋ 전지가 안돼서 예쁘기는 하다고 했다 ㅎㅎ
복숭아나무는 전지가 제대로 안되면 복숭아가 자잘하게 많이 열리고 작은 복숭아는 맛이 없단다.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내려가기도 어려운데 때마침 옆에있던 복숭아밭 주인이자 두술도가 대표인 두수형님이 내 나무 전지작업을 해주셨다. 상은언니 덕분이다. 내가 이 사진을 보며 잘라낸 가지 아깝다고 했더니 두수형님이 사전에서 ‘적반하장’의 뜻을 검색하셨다고 한다. ㅋㅋㅋㅋㅋ
여튼 내 나무는 전지를 잘 못하는 바람에 전지를 엄청 잘 하게 되었다.
복숭아 봉지싸러 다시 내려갔을땐 헤어리베치가 자라있었다. 멀다는 핑계로 씨뿌리러도 못가고 풀베고 거름주는일도 못했다. 늘 동네분들께 빚을 진다.
자연에 해가 되는일을 하지 않아 생명이 살아있는 밭에서 여러 종의 곤충과 벌레들을 만났다. 색도 예쁘고 모양도 다양한 녀석들
다 사라져 걱정이라는 벌도 전기톱 소리가 날만큼 많았다. 벌들의 서식환경을 회복하면 돌아와줄거란 희망도 생겼다.
봉지를 쌀 때 이미 다른 복숭아들보다 크기가 컸는데 갯수도 많아 봉지가 주렁주렁 열린 모양이었다. 이 날은 곰과 함께가지 않고 언니들이랑 갔다. 혼자 두 그루를 어찌 다 쌀까 했더니 현주언니가 도와주어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일은 하나도 안하고 나중에 합류한 곰이랑 하룻밤 자며 시골집 체험도 했다.
잘익어 물이 뚝뚝떨어지는 감사한 황도. 올해 복숭아맛 1등이다.
휘어진 가지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복숭아들을 구출해주었다. 이렇게 알이 굵은 복숭아가 가지 끝마다 주렁주렁 열렸으니 당연히 휘어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치지의 중요성이란~ ㅎㅎㅎ
긴 장마와 폭우 태풍등 악재가 많아 담을 박스를 별로 챙기지 않았더니 금세 모자랐다.
차에 비상삼각대 등을 담고 다니던 박스와 텃밭 용품(?)박스까지 비워서 복숭아를 담았다. 내 백도는 수확시기가 좀 이른듯하다. 작년처럼 잘 익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애는 거의 없고 초록초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덜익어 초록초록한것도 맛있는 딱복의 맛이지만 백도는 밭에서 따서 바로먹는 농부의 특권은 누리지 못하고 왔다.
두 그루 복숭아 나무 밑 풀들을 정리하고, 떨어진 봉지도 다 주워 올해 복숭아 농사를 마무리했다.
생태도시농부학교를 진행하며 느끼는 거지만 뭔가 공동의 일을 하려면 아무래도 일을 주도하고 준비하고 추가되는 일들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 복숭아 밭 개별농사는 주인부부가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유기인증을 받은 맛있는 복숭아 농사를 못짓게 된 것에서 시작했다. 맛있는 복숭아를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그것도 멀리에 사는 사람들과)함께 하려면 품이 많이든다. 때마다 뭐해야한다 안내도 해주시고, 전지하는 법이나 봉지싸는 법 동영상도 찍어 올려주시고, 수확시기도 알려주신다. 우리는 잘 쌓아져있는 비료포대를 갖다 뿌리기만 하지만 그 비료를 주문하고 정리한 사람도 있다. 풀천지라 지나다니기도 힘들기 때문에 몇 번이나 풀도 베어야하고, 녹비작물 헤어리베치 씨도 뿌려야하고, 멧돼지가 오면 담도 세워야하고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다른 일들도 많다. 바빠서 못하게 된 밭인데… 다~ 일인데… 돈을 받는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내 일만 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 몫의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기적인 나도 돌아본다. 내가 생각한 만큼의 이익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걸 뭐하러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주)드는데 정작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값없는 노동과 희생을 바탕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달랑 두 그루 복숭아 농사를, 그것도 1년에 몇 번 내려가지도 않고 지으며 느끼는 바가 많다. 좀 더 넓게보고 복잡한 연결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멍들고 벌레먹은 복숭아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이 아니라 괜찮은 나머지 반쪽을 감사히 먹는 사람이고 싶다.
감사한 두번째 해 복숭아 농사~ ^^
그 어느때보다 힘든 날씨에서도 이만큼 버티고 이만큼 맛있고 이만큼 거둘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래서 더욱 한조각, 한방울도 버리지 않고 남김없이 귀하게 먹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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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황도쨈, 백도 병조림, 콩포트 떼샷 ㅎㅎ |
작년, 첫해 일기는 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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