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봉지를 꼭 싸야하는건지도 몰랐지만 아직 매실만한데 벌써 봉지를 싸야 한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이번 주말이면 또 내려와야 한다는 것인가? 이러다 매주 내려오겠는데? 그냥 사먹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사실 들이는 시간도 그렇고 왔다갔다 기름값만 생각해도 사먹는게 훨씬 싸다. (물론 유기농은 아니지만) 그런데 이제 뭐든 돈으로, 경제적 논리로만 계산하는 건 하지 않기로 노력하는 중이라 더더욱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하는 사람들도 있고 달랑 한그루니 노동이라고 할 수도 없고, 먼길 왔다갔다 하는것만 괜찮으면 다 괜찮았다.
주말엔 꿈자람 수업이 있어 못가고, 사전투표를 마치고 선거날 곰이랑 새벽부터 문경으로 고고싱!!
영문도 모르는 울곰은 마누라에게 끌려 갑자기 팔자에도 없는 복숭아 밭에 가게 되었다.
한 주 사이에 복숭아가 조금 더 크고 발개졌다.
이제 벌레가 먹기 시작해서 구멍을 잘 봐야한다고 했다.
복숭아 밭 주인언니가 올려주신 동영상을 미리 잘 챙겨보고 봉지싸는 법도 배워서 봉지 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현장에 있던 반주민(반은 주민) 우리 식생활 문화 기획단 단장님이 다시 한번 꼼꼼히 알려주셨다. 오늘의 작업반장님 ㅎㅎ
곰도 날 좋은때 공기좋은 곳에서 작업하는 게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이렇게 잔뜩 달린 복숭아는 한 가지에 한 두개만 남기고 모두 솎아야한다. 그래야 크고 달고 맛있는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 봉지도 금세 떨어지지 않게 튼튼하게, 그러면서도 나중에 벗길때 힘들이지 않는 방법으로 싸야한다.
처음엔 하나 하는데 한~ 참 걸렸고 엉뚱하게 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점점 속도가 붙어서 재미있었다.
만날 실내에서 구부정하게 앉아 아래만 쳐다보고 작은 화면에 시선고정하며 살다가, 뜨거운 햇살 아래 뻐꾸기 소리 들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봉지 싸고 있으니 스트레칭도 되는것 같고 좋았다.
노동이라기보다 놀이인 달랑 한 그루 농부라서 할 수 있는 말일것이다. ㅎㅎ
이렇게 작고 익지도 않은 복숭아지만 좋은 향이 났다.
이름 모르지만 곤충친구들도 만나고, (사진엔 없는데 꼭 복숭아 털같이 생긴 벌레도 있다 ㅎㅎ )
그늘에 앉아 새참도 먹고, 해먹도 탔다.
(송하님 추천 울트라 장화 ㅎㅎ 드레스코드 레드)
보라보라 하던 헤어리베치는 이제 꽃도 지고 바싹 말라있었다. 요즘 너무도 가뭄이 심해서 복숭아도 고생이 많은데 헤어리베치가 복숭아에게 수분도 제공하고, 벌레도 덜 먹게하고 나중에 비가오면 쓰러져서 땅에 비료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녹비식물이라는데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헤어리베치다.
둘이서 싸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한그루 마무리 했다. 봉지를 싼 복숭아 나무는 크리스마스 전구를 단것 같은 모양이다. 노란 봉지는 더욱 그렇다 ㅎㅎ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또 난생 처음으로 이양기로 모 심는것도 봤다.
손으로 모내기 하느라 여러명이 하루 종일 걸렸는데 얘는 혼자 순식간에 해치운다. 우오어어어…
따 버리기 아까운 솎은복숭아는 시험삼아 청이라도 담가 보려고 챙기고,
끝내주는 희양산 뷰를 보며 동네 분 댁에서 저녁도 먹고왔다.
다 익을때 쯤이면 멧돼지가 그렇게 먹어치우고,
(바로 길 건너에 관행농 복숭아 밭이 있는데 그곳은 제초제도 뿌리고 농약도 해서 멧돼지가 절대 먹지 않는단다. ㅠ <즐거운 불편>에서 ‘현대인들은 동물이나 곤충도 먹지 않는걸 먹고 산다.’ 던 문장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
태풍에 복숭아가 다 떨어지기도 한다던데…
무사히 복숭아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당장은 너무도 심한 가뭄이 걱정이다.. ㅠㅠ
이러다가 또 40일 넘어 비만 오는건 아니겠지?
생초보 한그루 농부 보람있게 복숭아가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길… 🙏
자연과 가까이, 소유는 적게, 생각은 깊게,
멀~~ 리 보며 행동하는 삶 &
늘 현재에 감사하고 어울려 사는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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