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찜은 쉬운 반찬 중 하나다. 제철 단맛가득 가지를 김오른 찜통에 쪄서 양념간장만 올리면 끝! 그런데 그 맛은 달고 폭신해서 한끼에 가지 하나 다 먹는거 우습다. 가지가 많이 열려서 더 많이 해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주 심플하지만 건강하고 맛있는 한끼로 한주를 시작했다.
저녁엔 오랜만에 된장찌개 끓였다. 된장찌개 김치찌개같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이렇게 오랜만에 만들다니… ㅎㅎ 감자 호박 양파가 모두 맛있는 계절이라 된장찌개 맛도 엄청났다. 백령도 꽃게를 넣어서 더 감칠맛 폭발이었다. 반찬이 없는것 같았는데 가지랑 양배추 찌고 냉장고에 있는걸 하나씩 꺼냈더니 한상가득이었다. 여름제철 식단, 정말 집밥다운 집밥 먹었다.
이번 교류회는 동학동민운동 기념공원에서 열린다. 지리산 실상사때 처럼 이번에도 공감에 대해, 역사적 의미에 대해 먼저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전체를 둘러보며 해설듣지 못하고 PPT로만 듣는 슬픈일이 벌어졌지만(미래엔 해수욕을 VR로 한다는 어떤 광고가 오버랩 됨 ㅠㅠ) 실내 전시관을 보면서도 동학정신의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일회용을 대신해 내내 사용하라며 리유저블 컵을 주신것도 좋았다. 다만 나는 텀블러가 있어 필요없는데 이름을 써주셔서 꼭 가져야만 한다는 게 아쉬웠다. 다회용으로 쓰레기를 만들면 더욱 해롭다.. ㅠㅠ
저녁은 근처의(그리고 거의 유일한) 식당에서 저녁먹었다. 등뼈 김치찜이라 메뉴는 아쉬웠지만 나물반찬이 많아서 밑반찬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훌륭한 신념&마음과 하고있는 프로젝트 등의 이야기를 마치고 신기할정도로 자연스럽게 놀이판이 시작됐다. 예술가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즉흥적으로 교감하는 어떤 것이 있는듯 하다. 그런 분위기에 동하지 않고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 있으면서 누가 노래시켜도 절대 부르지 않는 나인데 뭐 때문인지 나도 나가 같이 춤췄다. 그것이 무대가 없는 우리 소리의 특징이던가? 새롭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너무도 거한 안주를 준비해주셔서 무형문화재가 빚었다는 지역막걸리와 함께 먹으면서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제 개인과 개인 삼삼오오 모여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읽기의 말들>에 ”텍스트는 문서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활자책이 있으면 사람책, 자연책도 있다. 문자로 적힌 텍스트를 읽는 행위만 독서가 아니다. 우주의 전 존재와 그 몸짓, 현상과 침묵을 읽는 것도 독서다.(…) 길 떠나는 날은 종일 공부하는 날이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여러 사람책을 읽고 공부한 시간이었다. 뭔가가 충만해진 느낌. 오랜만에 밤을 새며 이야기했다.
아침엔 일찍 일어난 후지몽상과 오하이오님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나라 언론은 믿을 수 없으니 일본에서의 상황은 어떤지 물었는데 대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뉴스며 언론에 한줄도 나오지 않아 전~ 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한국에와서 ‘후쿠시마 후쿠시마’ 하는 소리를 듣고 알게됐다고 한다. ㅠㅠ 후쿠시마 사태 이후 탈원전 운동이 크게 일었지만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지진 못했고, 그 이후의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 오만해진 현일본 정부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고 그냥 그대로 소리없이 무단방류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막을 수 있는 방법도 딱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력감을 느꼈다. 이렇게 인간은 생명의 바다에 불가역적 몹쓸짓을 하고야 마는것인가? 우린 뭘 해야할까?
정읍에서의 짧고도 강력한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다시 컴백홈~~~ 독일에 있을때 생각나는 기차여행이었다. 그땐 기차랑 참 친했는데 ㅎㅎ 탄소배출이 엄청난 자동차 여행을 지양하고 곰과도 기차로 와서 현지에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기차여행을 계획해봐야겠다.
간식으론 토종 찰옥수수와 커피먹었다. 냉동실에 옥수수가 잔뜩이니 열심히 먹어야지^^
동학농민운동기념공원에서 설명을 듣다가 동학의 정신이 발현하던 시기에 세계의 흐름에 대한 소개부분에 돈까스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은 불교국가라 동물의 피가 땅에 떨어지면 안된다고 여길 정도로 채식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과의 체격차이가 육식여부에 있다고 판단해 국가 차원에서 육식을 장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기를 먹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고기를 즐기지는 않았을 터, 냄새도 싫어하고 살이 익은 그 모양 그대로를 거부해서 보이지 않게 고기를 속에 넣고 감싼 음식이 바로 돈까스라고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일본도 1인당 고기소비량이 서구와 만만치 않은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이 시작된 70년대 이후부터니까 더욱 짧은 시간동안 폭발적으로 고기 소비량이 늘어난 것이고 말이다.
우리가 ‘자연스런 문화’ 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알고보면 매우 인공적이고, 기간도 짧아 문화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도 많다. 어떤 현상이나 조금 긴 유행 같은 것이랄까?
정치나 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식습관은 그러므로 시대에 맞게 또 변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기도 한다.
요즘 밖에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듣는 인사가
“너무 더운데 어떻게 지내세요?” 다. 그런데 또 우리는 남은 생애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의 날씨는 더욱 극단으로 치닫을테니 말이다.
기후 재앙의 시대! 그러나 변화는 더딘 시절!
개인의 실천이, 그러니까
고기한 점 덜 먹고, 텀블러 쓰고, 코드를 뽑고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의 일이 무슨 도움이 될까 회의가 느껴지는 때가 많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가장 어두울 때가 동이트기 직전이고, 가장 큰 변혁이 있을때가 가장 부패하고 앞이 안보이던 때였던 역사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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